어디까지가 사실(史實)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 만큼이나 역사와 허구에 대한 궁금증도 깊어만 간다. |
미실 묘사한 '화랑세기' 학계선 진위 논쟁 |
덕만-천명공주 쌍둥이 설정은 허구…43세 요절 진흥왕 할아버지로 나와 |
▶미실은 진짜? 가짜?
미실이라는 인물은 '화랑세기'에서만 그려진다. 신라 김대문이 편찬했다는 화랑들의 족보책이다. 미실은 화랑의 한 원류인 풍월주 가문에서 태어났고, 왕은 물론 숱한 풍월주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런데 그 원본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미실을 등장시킨 화랑세기는 일제시대 일본 궁내성에서 발견해 베꼈다는 필사본 속에만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여전히 '진짜다, 가짜다' 논란 중이다.
▶미실과 덕만은 동시대 인물?
화랑세기 속의 미실은 540년대에 태어나 607년에 병든뒤 곧 죽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인 덕만의 출생연도는 기록에 없다. 632~647년의 재위기간만 남아있다. 학계에선 덕만이 50세 전후에 여왕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략 580년 전후에 태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둘의 나이차는 대략 30~40세 차이. 따라서 잘 해야 15년 안팎인 드라마의 나이설정은 허구다.
▶덕만과 천명공주는 쌍둥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천명이 차녀로 나온다. 화랑세기에서는 천명이 장녀로 나온다. 둘이 자매인 것은 맞는 셈이다.
그런데 쌍둥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당연히 드라마속 미실과 덕만의 대결구도 설정을 위해 천명을 희생양으로, 작전상 만들어진 각본에 불과하다.
▶김유신 장군은 덕만-천명과 삼각관계?
드라마속 천명은 아들 김춘추(태종무열왕)가 갓 돌을 지났을 때 위기에서 김유신으로부터 도움을 받은후 김유신을 흠모한다. 이후 동생 덕만이도 김유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고민한다.
역사 속 김유신과 김춘추는 아홉 살 터울의 처남 매부지간(후에 김춘추가 장인도 된다). 김춘추가 돌이었을 때, 김유신은 열 살이었다. 적어도 15세쯤 연하의 김유신을 놓고 공주 자매가 삼각관계에 놓였다? 역시 기록에 없는 대본이다.
▶75세 이순재가 진흥왕?
드라마속 허구치고는 좀 심했다. 신라 24대 진흥왕은 영토확장을 꾀하며 진흥왕순수비를 남긴 영웅이었지만, 7세에 왕위에 올라 43세에 병으로 요절한 비운의 왕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에선 올해 만 75세 되신 '이순재 할아버지'가 흰 수염 휘날리며 젊은 진흥왕의 위엄을 과시했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
미실은 진흥왕의 친 아들(둘째)인 금륜(제25대 진지왕)과도 정을 통했다. 왕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화랑세기는 적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비담을 얻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비담은 선덕여왕 말년에 상대등(총리)이 된 후 왕권찬탈의 반란을 일으킨 인물로만 기록돼 있다. 출생은 미지수.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죽고, 비담은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해 진압된다. 여기까지가 기록이다. 그런데 만약 비담을 미실의 아들도 둔갑시킨다면? 당연히 미실과 덕만의 복수혈전이 막판까지 짜릿해진다.
▶미실은 애정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맞다. 드라마에선 미실과 남동생(미생)과의 사통을 빼는 등 오히려 축소시켰다.
화랑세기에서 미실은 대대로 왕의 여자가 되는 집안(대원신통)의 출신이다. 미실은 이모(사도왕후)의 남편인 진흥왕의 애첩으로 아들과 두 딸을 낳는다. 진흥왕의 생모인 지소태후는 남편 법흥왕(진흥왕의 부친)이 아닌 이사부('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의 그 이사부)와의 사이에 난 배다른 아들(세종)을 미실의 남편으로 정했다.
미실은 세종의 보좌관인 설원랑과도 사통해 보종을 낳고, 이모인 사도왕후가 진흥왕의 왕후가 되기전에 얻은 아들인 동륜과도 관계해 애소공주를 낳는다. 동륜의 아들인 진평왕과도 사통해 보화공주를 낳는 등 3대와 관계한다. 어머니(미실)쪽으로는 오빠 동생이 분명한데, 아버지 쪽으로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되는 '콩가루' 집안이다.
그런데 당시엔 남편과 정부의 구분이 애매하고, 왕실 친족간의 다단계 애정행각 또한 용인 내지는 묵인되던 시대라고 역사는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