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합창 지휘의 전설'로 불리는 독일 지휘자 헬무트 릴링(Helmuth Rilling·76)이 첫 내한한다. 이달 16일부터 열리는 '제3회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반세기 동안 호흡을 맞춰온 자신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각 내한'하는 것이다. 릴링은 바흐 탄생 300주년이었던 1985년 바흐의 교회 칸타타 전곡(全曲)을 최초로 녹음하고, 바흐 서거 250주기이자 새로운 밀레니엄을 알렸던 2000년에는 바흐의 작품 대부분을 음반 172장으로 완성시키는 등 올곧게 '바흐 외길'을 걸어온 거장이다.
전화 인터뷰에서 릴링은 "처음 합창단을 창단했던 대학 시절에는 나 자신도 이처럼 오랫동안 바흐를 지휘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21세 때인 1954년, 대학생이던 그는 합창단 '게힝어 칸토라이'를 조직했으며 지금도 이 합창단은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처의 작은 마을인 게힝에 있는 친구의 시골 집에서 동료학생들과 함께 노래한 것이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1972년 그는 바흐의 칸타타 200여 곡을 모두 녹음하는 대장정에 나섰고, 이 계획은 13년이 걸렸다. 릴링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바흐 자신이 평생 종교음악에 매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릴링의 음악인생은 온통 '바흐'로 채워져 있다. 독일에서 이끌고 있는 악단은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이며, 미국에서 창설하고 직접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음악제는 '오리건 바흐 페스티벌'이다. 한평생 바흐를 연구하고 지휘하고 있는 셈이다. 릴링은 "음악사에서 바흐만큼 중요한 스승은 없었다. 모차르트와 멘델스존, 브람스와 슈만이 모두 바흐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나 역시 같은 길을 따라서 걷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강해근 한양대 음대 학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바흐의 음악은 사실상 헬무트 릴링과 칼 리히터(Karl Richter)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물어가는 '거장들의 시대'에 마지막 거장의 음악을 듣고, 독일 합창음악의 진면목을 접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릴링은 내한연주에서 자신의 악단인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 합창단 게힝어 칸토라이와 함께 바흐의 칸타타 〈울며 탄식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도다〉, 모테트 〈예수는 나의 기쁨〉, 마니피카트 BWV(바흐 작품 번호) 243 등을 들려준다.
▶헬무트 릴링 내한 공연, 10월 30일 고양아람누리 1577-7766,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02)2220-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