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무럭 김을 뿜는 섭씨 150도의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이 한밤의 도로에 쏟아졌다. 고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25일 밤 10시, 소공로 서울광장~한국은행 네거리 구간에서 노면 정비 공사가 시작됐다. 중장비 운전기사와 도로통제요원 속에 삽과 써레, 대형 빗자루를 든 인부 4명이 형광색 조끼 차림으로 서 있었다. 아스콘 다루는 일만 20년 이상 해온 이들이다.

이들은 '아스팔트 특공'이라 불린다. 뜨겁고 끈끈한 아스팔트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뜻으로 알려졌다. 경력 25년의 장용철(50)씨는 무뚝뚝했다.

"체험 르포하러 오는 건 좋은데 군화에 예비군복 입고 오세요. 끓는 물보다 더 뜨거운 아스콘 위에서 일해야 해. 덥다고 면바지나 반소매로 왔다간 화상 입어요. 냄새도 독해요. 이 일에 이력이 난 우리도 일 끝날 때 되면 몸이 시들시들해져."

이날 공사 구간은 길이 635m의 왕복 5차선 도로다. 밤 11시30분쯤, 아스콘을 실은 25t 덤프트럭이 '아스팔트 피니셔'에 다가왔다. 아스콘을 일정한 폭으로 노면에 까는 장비다. 덤프트럭이 피니셔에 아스콘을 쏟아부었다. 피니셔가 초속 10㎝ 안팎의 속도로 도로를 지나며 폭 4~5m, 두께 약 6㎝로 아스콘을 깔았다.

이제 특공들 차례다. 이들은 피니셔 뒤에 바짝 붙어 있다가 아스콘이 퍼지는 양쪽 끝을 써레와 빗자루로 훑었다. 덩어리를 골라내고 울퉁불퉁한 곳을 평평하게 다졌다. 이어 8~12t짜리 롤러 3대가 노면 위를 다섯 차례 반복해서 지나가며 아스콘을 압축했다.

가만히 있기 겸연쩍어 빗자루를 들자, 32년 경력의 김현동(52)씨가 역정을 냈다.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니까! 다시 해야 하잖아. 빗자루질만 잘하려고 해도 석 달은 걸려요."

지난 17일 오후 11시쯤 서울 송파구 개롱역 근처 도로에서‘아스팔트 피니셔’차량이 섭씨 150도가 넘는 아스팔트 곤죽을 쏟아내자‘특공’들이 빗자루와 삽을 들고 길을 다지고 있다.

서울 시내 도로 중 아스팔트가 깔린 노선은 총 300여개다. 서울시에서 매년 60~70개 노선을 추려 노면을 정비한다. 공사 70~80%가 봄(3~6월)·가을(9~10월)에 이뤄진다. 경력 25년의 손동호(58)씨는 "가끔 한여름에도 공사할 때가 있는데 아주 고역"이라고 했다. "위에서는 땡볕이 내리쬐지, 밑에서는 아스콘 열이 올라오지…. 틈만 나면 소금을 한 움큼씩 집어먹어요."

아스콘에는 일반 아스콘과 배수성 아스콘이 있다. 배수성 아스콘으로 포장해야 소음도 적고 빗물도 덜 고인다. 대신 배수성 아스콘(170~180도)이 일반 아스콘(110~150도)보다 훨씬 뜨겁다. 공구에 쉽게 달라붙고 빨리 굳어 다루기 힘들다.

냄새도 훨씬 지독하다. 고무성분이 더 많이 들어있는 까닭이다. 김씨는 "배수성 아스콘을 깔고 온 날은 아내가 곁에 얼씬도 안 한다"고 했다.

이 악취에는 아스팔트 흄(벤진 추출물)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유독성이지만,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물질이 아니라서 마스크 착용 같은 안전기준이 없다.

지난 17일 밤 10시, 이들은 서울 송파구 성내 5교~개롱역 네거리 사이의 왕복 6차선 도로에 배수성 아스콘을 깔았다. 자정을 넘겨 오전 1시20분쯤, 아스콘을 실어 나르던 덤프트럭 행렬이 잠깐 멈췄다. 장씨가 "이 틈에 요기하자"고 했다.

특공들은 도로변에 앉아 2500원짜리 김밥 한 줄을 우물우물 씹었다. 장씨는 "특공 일로 목돈을 모아 중장비 대여 사업을 했는데 IMF 때 망했다"고 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농부였다. 서인석(43)씨가 음료수를 들이켰다. "농사 지어봐야 남는 것도 없고…."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올 8월 기준 전국의 포장공사업체가 2287개라고 집계했다. 특공 숫자는 5000~8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주·야간 업무와 숙련도에 따라 20만원 안팎의 일당을 번다. 장씨는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생활이 불규칙하고 일이 고되어서 젊은이들은 안 하려 한다"고 했다.

덤프트럭이 도착해 휴식시간은 12분 만에 끝났다. 각자 남은 김밥을 허겁지겁 쓸어넣고 담배를 한 대씩 태운 뒤 일어섰다.

오전 7시5분쯤 공사가 끝나고 차량 통행이 재개됐다. 900t 이상의 아스콘과 씨름한 장씨가 뻑뻑한 눈을 비비며 "갓 포장한 도로 위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걸 보면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는 밤새 고무 타는 냄새를 쐰 끝이라 발이 뜨겁고 목이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