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바둑캐스터 3파전이 불을 뿜고 있다. 바둑TV 생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 인기 높은 이승현(29) 최유진(27) 도은교(24). 바둑팬들 사이에선 웬만한 프로기사들 못지않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반상(盤上) 미녀트리오'다.

바둑캐스터는 바둑리그나 명인전, 국제대회 등 국내외 최고수준 대국을 중계하는 전문MC다. 심층해설을 담당하는 프로고단자는 물론 따로 있다. 진행자(캐스터)와 해설자(전문가) 2인 체제로 이뤄지는 스포츠 중계 형태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국내 바둑전문 캐스터는 여성프로와 남성 진행자까지 모두 포함해도 10여명에 불과한 '희귀직종'이다.

언변 순발력 용모 등도 중요하지만 첫째 요건은 역시 높은 바둑실력이다. 셋 모두 한때 프로를 지망했던 아마 고수들. 이승현은 2002년 여류명인전 우승 등 다채로운 입상경력이 있고, 도은교는 아예 최근 다시 입단대회를 준비 중일 만큼 막강한 실력자다. 최유진도 전국대학생대회 여자부서 우승해 봤다. 바둑광 아버지 덕에 바둑의 길을 걷게 됐다는 점이 이들 셋의 공통점이다.

바둑 전문 여성캐스터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승현 최유진 도은교(왼쪽부터).‘ 동업자’로서의 우정 속에 최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이승현은 대학 1년 때인 2000년 KBS '코미디파일' 출연으로 방송과 인연을 맺은 10년차 베테랑. 한때 스카이바둑서 활동하다 2003년 바둑TV로 복귀, 올해 명인전을 거점(據點)으로 맹활약 중이다. 능숙한 언변과 방송친화적 외모를 고루 갖춘 '여성 캐스터 맏언니'로 자리를 굳혔다.

최유진은 야무진 발음과 함께 준비성 철저한 캐스터로 유명하다. 스포츠 중계를 매일 켜놓은 채 듣다가, 좋은 표현이 나오면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놓고 외울 정도로 극성이다. 방송아카데미도 여러 곳 이수했다. 2002년 스카이바둑 '주간 명승부 리뷰'로 데뷔, 바둑 리포터도 거쳤다.

막내 도은교는 편하고 푸근한 목소리가 최대 강점. '티브로드배 어린이 바둑대회'로 방송에 뛰어든 지 딱 1년 된 신인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12세 때 대한생명배 세계대회 제패 후 연구생 2조까지 올랐다가 학업을 택했던 그는 "이젠 오로지 방송과 바둑에 올인하겠다"고 다짐한다.

셋은 묘한 관계로 얽혀 있다. 이승현과 최유진은 명지대 바둑학과 동기생이고(도은교는 연세대 수학과 졸업), 이승현-도은교는 어린 시절 같은 도장에서 함께 공부한 인연이 있다. 희귀직종 '동업자들' 답게 서로 도우며 챙겨주지만 뒤처지지 않으려는 경쟁의식도 치열하다. "프로그램 개편 때면 물밑 신경전으로 불꽃이 튄다"(바둑TV 임진영 기전팀장)고 할 정도.

바둑캐스터의 세계는 생각보다 고되다. 따로 대본이 없어 웬만한 자료는 스스로 챙겨 들어가야 한다. 화장, 대본 연습, 리허설 등 2시간 준비 후 2~3시간 본방송을 끝내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 "밤 11시 넘어 바둑리그 끝내고 이튿날 아침 방송했더니 코피가 쏟아지더라" "감기로 콧물이 줄줄 쏟아져도 훌쩍일 수도 없는 직업" 등 푸념도 다채롭다.

셋 모두 출연 편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프리랜서. 주(週)당 평균 3회 안팎 중계석에 올라 월평균 300만~400만원을 번다. 이승현은 다른 바둑기관 행정 일도 돕는 멀티 잡(?)으로 유명하다. 최유진은 KBS 바둑프로까지 '평정'했다.

"언젠가 바둑뉴스 프로그램이 생기면 본격적인 앵커로 활동하는 게 꿈이에요."(도은교)

"나는 프로기사들의 인간적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토크쇼를 해 보고 싶은데…."(최유진)

"첫째 바둑 다큐멘터리, 두 번째 바둑 대담코너, 세 번째는 바둑퀴즈 프로그램 정도…. 꽤 소박하죠?"(이승현) 바둑은 아마추어 신분이지만 맡은 일엔 똑 부러지는 프로인 세 미녀캐스터의 장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