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이설(34)은 가부장적인 가족 질서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의 파열음을 기록한다. 그녀의 첫 장편 《나쁜 피》는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가운데 유일한 장편이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2006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소설집 한 권 묶지 않은 신예가 첫 장편으로 단숨에 동인문학상 본선에 진출했다"며 "간결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첫 문장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나쁜 피》의 가족 이야기는 1990년대 이후 김형경·전경린 등의 여성 소설가들이 주도한 '여성의 탈(脫)가족' 서사와 확연히 차별된다. 여성이 집으로 돌아와 남자 대신 가장이 된다는 2000년 이후 여성소설의 새 흐름과도 차별된다. 김이설이 만든 가족은 가부장의 상징인 남자를 가족 밖으로 내몰고 여성만으로 가정을 이룬다. 그 가족은 혈연의 벽까지 넘어섰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배경은 1년 내내 썩은 냄새가 나는 지방도시 천변(川邊)의 고물상 거리다. 알코올 중독자인 외할머니와 사는 34세 독신녀 화숙에게 가족은 지긋지긋한 짐일 뿐이다. 정신지체에 간질을 앓던 엄마는 동네남자들의 노리개로 살다 친오빠에게 밟혀 죽는다. 외숙모는 가정폭력을 못 견디고 고물상 직원과 야반도주한다. 외사촌인 수연은 도박에 빠진 남편과의 불화를 외도로 풀다 엄마의 뒤를 이어 가출한다. 충격에 빠진 수연의 딸 혜주는 실어증에 걸린다.

김이설의 소설은 불편함과 몰입을 동시에 경험케 한다. 최근 등장한 신예들이 즐겨 쓰는 환상이나 엽기·변신의 서사 대신 정통 사실주의를 앞세운 김이설의 문체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서술과 사진을 찍는 것 같은 치밀한 묘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가족은 반드시 피붙이여야 하는가. 남자 없는 여자만의 가족은 불가능한 것일까. 소설가 김이설의 가족 서사는 그 불온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대답이다.

―등단작인 단편 〈열세살〉을 비롯해 작품 대부분이 고통 속에 방치된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다.

"남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 세상은 여자의 몸으로는 살기 힘든 곳이다. 여성 작가로서 자연히 그런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내용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이상적인 가족은 여자들로만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충격요법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세상은 소설보다 더 끔찍하다. 여자를 피해자로 보고 남자를 가해자로 보는 시각에 촌스러움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구도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환상, 유령, 가상현실 등 비현실적 요소로 가득한 2000년대 소설들 틈에서 김이설 소설의 특이한 점은 현실을 직접 주제화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작가다. 부족한 상상력을 공들인 묘사로 채우려 애쓸 뿐이다. 짧고 강렬한 문장을 내 스타일로 삼고 싶다."

―정이현이나 백영옥처럼 도시 여성이 등장하는 트렌디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나.

"내가 사는 청주에서 서울에 올라올 때면 서울 아가씨들이 참 세련됐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왠지 내가 쓸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다."

―김이설은 본명인가.

"필명이다. 본명은 김지연이다. 이전의 소설들과는 다른 이야기(이설·異說)를 쓰고, 결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습작 기간에 지었다."

―당신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일 것 같다. 미혼인가?

"(크게 웃으며) 2004년 9월 결혼해 44개월과 8개월 된 딸을 뒀다. 큰애를 임신했을 때 등단했고, 둘째를 가진 상태에서 이번 작품을 썼다. 일상에서의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타고 공포영화도 못 보는데, 소설을 쓸 때는 몸속에서 독기가 솟아난다. 남편은 소설 쓰는 김이설과 아내이자 아이들 엄마인 김지연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김이설은…

197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고 지금은 청주에서 살고 있다. 일기는 안 써도 편지는 매일 쓴다. 한글을 뗀 이후부터 지금까지 주고받은 편지가 글쓰기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까지 모범생이었으나 고등학교 때 영화·음악·소설에 빠져,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제대로 열등생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국어교사에서 소설가로 꿈을 바꾼 것이 이때다. 대학 시절 '외다수'라는 모임에서 소설 쓰기를 시작했고, 10년의 긴 습작생활 끝에 등단했다. 낮에는 애 엄마, 밤에는 소설가로 이중생활 중이다. 어린 두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 밤 열 시 무렵이 하루 중 가장 힘겨운 순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