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MBC 대학가요제

제 33회 'MBC 대학가요제'가 25일 인천대학교에서 열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다시 상당부분 대중으로부터 무시당했다.

대학가요제의 몰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사실상 대중에 익숙한 뮤지션을 배출한 적도 없고, 대상 수상자들 역시 거의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다. 대중 입장에서는 거의 사멸되다시피 한 상이다.

물론 이를 되살리고자 MBC 측에서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5년 보컬 이상미가 주목받은 그룹 '익스'에 대상을 주면서 이를 대학가요제 인기 부활 계기로 삼으려 안간힘을 썼다.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홍보성 보도까지 내보냈다. 그러나 반짝 화제에 그쳤다.

2007년 대학가요제는 1부 시청률 8.6%, 2부 9.5%를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1부 5.7%, 2부 7.3%로 더 떨어졌다. 올해도 7.1~8.3%에 그쳤다. 연례 이벤트 프로그램으로 이 정도 무시를 당하는 것도 없다. 이제는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신세대들도 속속 등장할 지경이다. 물론, 늘 되풀이되는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1977년 제 1회가 개최된 MBC 대학가요제는 이후 십여년 간 한국 대중음악 흐름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당연히 대학가요제 출신 스타들도 많았고, 대상곡들은 한국 대중음악 클래식이 됐다.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유열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등 젊은 세대 귀에도 익숙한 노래들이 많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이르러 조금씩 관심과 주목도가 낮아지다가, 1993년 전람회, 1994년 이한철이라는 대상 수상자를 배출한 뒤로는 점차 '거론조차 안 되는' 스탠스로 넘어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대학가요제의 성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학가요제 등장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음악평론가 박준흠은 대학가요제에 대해 "유신정권 말기 사람들의 증폭된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의도가 대마초 파동으로 허전해진 대중음악계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방송사의 전략과 맞아 떨어진 결과물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정부분 과잉된 해석이다. 아귀는 맞지만, 당시 문화 흐름에 대한 시선이 제어됐다. 1970년대 중후반은 청년 정서가 막 대중문화상품으로 소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시 대학생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대성공을 거두며 대학생 소재 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음악 장르도 마찬가지였다. 앞선 '바보들의 행진' 중 "요즘 정구랑 기타 못 치는 대학생이 어디 있느냐"라는 대사가 등장했을 정도로, 대학생 아마추어 뮤지션 열기는 가히 폭발 직전의 상태였다. 대학 축제에는 학생 가요제가 빠지는 일이 없었고, 심지어 단과대 차원에서까지 가요제가 열리곤 했다.

MBC 대학가요제는 이처럼, 이미 확고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캠퍼스 가요제에 방송이 상업적 가능성을 인지, 수용한 형태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정치권과 대중음악계의 각기 다른 목적이 맞아 떨어져 탄생한 생뚱맞은 행사가 아니라, 이미 문화적 배경이 충분히 뒷받침된 아이템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같은 배경에 부응하듯, 제 1회 대상은 젊은 세대의 열광 대상이자 메인스트림 대중음악계에서 아직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에 돌아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대학가요제가 대중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대학가요제 출신'은 일종의 성공공식 레이블처럼 자리 잡게 됐다. 대학가요제만으로 수요를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MBC 측은 1979년부터 유사한 성격의 '강변가요제'를 따로 개최, 이선희, 이상은 등의 거물급 뮤지션을 데뷔시켰다.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쌍두마차는 1980년대 대중음악계를 완전 장악함으로써 상당히 특이한 방식의 세대교체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청년 정서' '대학생 문화'의 성공신화는 1980년대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몇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대학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정구랑 기타 못 치는 대학생이 어디 있느냐"는 말은 쑥 들어갔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문화 속 대중문화 유행 주류는 영화가 잡게 됐다. 노태우 정권의 영화심의 완화 조치 이후 수많은 '금지된 걸작'들이 늦깎이 상영되고, 할리우드 영화 직배체제 안착, 가정용 비디오데크 보급, 영화잡지의 잇따른 창간 등 트렌드 중심이 될 모든 호재가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던 손에서 기타를 치는 손으로, 다시 8㎜와 디지털 캠코더를 든 손으로 대학문화 중심축이 이동해간 것이다. 1970~80년대 만한 대학생 층의 열기와 애착이 없으니 자연 대학가요제에 대한 관심도 떨어져갔다. 더군다나 IMF 경제 위기 이후로는 대학생의 대중문화 관심도 자체가 떨어졌다.

둘째, '대학생'이라는 코드가 상징하던 사회 엘리트성이 점차 희석돼, 대중의 대학문화에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실제로 1980년대 내내 대학진학률은 급속도로 치솟았고, 2008년에는 83.8%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에 이르게 됐다. '대학생'은 '보통 젊은이'가 됐다. 이들이 나오는 가요제 역시 그저 '보통 아마추어 젊은이 가요제'에 불과해졌다는 것이다.

셋째, 대대적인 대중문화 개방과 시장 확대 등으로 대중의 음악 취향이 고도화됐다. 대학생의 '풋풋함'이 음악적 선도성과 일치되던 시기가 지나가 버렸다. 이에 따라 전문 뮤지션의 시대가 열렸고, 대중음악계 자체도 전문산업화 돼 기획사 시스템으로 옮아갔다. 아마추어리즘은 나설 자리가 없었다.

이처럼, MBC 대학가요제는 이미 그 의미와 효용성 면에서 진즉에 폐지됐어야 옳은 이벤트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대중음악계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며, 성립근거조차 해체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왜 MBC 측은, 이미 15년 전 역할을 끝낸 가요제를 폐지시키지 못하는 걸까.

그에 대한 이유는 다소 흐릿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소위 '표면적으로는 명분이 있는, 전통 깊은 프로그램'을 없애고 싶지 않은 의도일 수 있다. 마치 '유효기간'을 10년 가까이 넘겨 2002년에야 종영한 23년 장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처럼 말이다. 둘 다 표면적으로는 '농촌 현실 반영' '청년 문화 육성' 등 명분은 좋다. 다만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뿐이다. 농촌은 더 이상 소외된 지방을 대표하지 못하고, 대학생 아마추어 뮤지션에 공공재인 전파를 빌려줄 이유도 사라졌다. 이도 아니라면, 대학가요제 고집 이유는 더욱 극심한 미스터리로 빨려 들어간다.

어찌됐건 현 대학가요제 상황은 이미 정상이 아니다. 대학생 가요제를 홍보하기 위해 이효리의 7년 연속 MC 수락을 알리고, '오빠밴드' 출연을 대대적으로 공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상했던 대로 시청률은 또다시 바닥을 쳤다. 과연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이벤트를 MBC가 언제까지 끌어가려 하는지 궁금증이 일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신선한 젊은 뮤지션을 발굴하자는 취지라면 '대학'자부터 뺄 필요가 있다. 고교를 중퇴해 대학가요제에 참가할 수 없었던 서태지에게 '문화대통령' 칭호가 붙은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다면 더더욱 그렇다. 혹 대학문화 육성이라는 차원이라면, 굳이 실제 대학생 현실과 접점이 떨어지는 가요제 형식을 취할 이유가 없다. 상상력을 발휘해봐야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단물까지 몇 번이고 더 뽑아낸 뒤에야 마침내 떠나는 게 '상식'인 대중문화산업에선 잘 통용되지 않는 말이긴 하다. 그러다 MBC 대학가요제에는 이제 단물은커녕 습기조차도 희박하다. 포기할 때가 됐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같은 주문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기형도의 시 '노인들'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인용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