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에서는 매년 4000여명에 이르는 소년들이 음악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됐다. 여성의 음역을 소화하기 위해 남성의 성기를 거세한 가수를 뜻하는 '카스트라토(castrato)'가 되기 위해서였다.

현재 '유럽 최고의 여성 성악가'로 꼽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Bartoli)가 지금은 잊힌 이들의 노래를 음반 《사크리피시움(Sacrificium·희생)》으로 담아냈다. 헨델을 비롯해 당대의 작곡가들이 카스트라토를 위해 쓴 오페라 아리아를 모은 음반으로, 바르톨리는 음반 표지에서 자신의 얼굴과 거세된 남성의 동상을 합성시키는 파격을 선보였다.

최근 거세된 남성 가수인 카스트라토의 노래들을 모아 음반을 펴낸 이탈리아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아이들이 10~12명씩 줄줄이 달린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의 집안에서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누구 하나의 희생이 필요했을 거예요. 극소수의 카스트라토만이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처럼 부와 명예를 누렸고, 다른 수천 명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는 냉대와 배척을 받고서 자살을 하기까지 했어요."

18세기에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카스트라토가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며, 20세기 초반까지도 '마지막 카스트라토'로 불리는 알렉산드로 모레스키(1858~1922)가 활동한 기록과 사진이 남아 있다. 전화 인터뷰에서 바르톨리는 "그들의 음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그 밑에는 비도덕적이고 냉혹한 비극이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오페라 성악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바르톨리는 8세 때 푸치니의 《토스카》에서 양치기 소년으로 처음 출연했다. 그는 "무대 뒤에서 목소리로만 나왔지만, 그때 오페라의 세계를 처음 접했다"고 했다. 14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본격적인 성악 수업을 받았고,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19세 때 이탈리아의 TV 콘테스트, 이듬해 프랑스 파리의 오디션에 잇달아 합격하며 이름을 알렸다. 바르톨리는 "당시 로마 음악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탈리아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요리와 음악을 사랑하고 놀랄 만큼 빼어난 성악적 기량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르톨리는 비발디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오페라 아리아를 발굴한 음반(데카)으로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모차르트의 살해범' 누명을 뒤집어쓴 살리에리의 아리아를 재조명하는 등 학구적인 면모로도 유명하다. 비(非)대중적인 행보를 통해서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이례적인 성악가인 셈이다.

그는 "지금도 대중적으로 친숙하지는 않지만 빼어난 노래들은 너무나 많다. 애정과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내 원칙"이라고 말했다.

[신뢰를 주는 목소리 만드는 훈련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