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제 시간내에 끝낼 수 있겠어? 연습이랑 실전은 다르단 말이야!”
지난 21일 오전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귀금속 공예실. 학생 3명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전국기능대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브로치 제작 연습중인 학교대표 2명을 지도하는 윤태식(21,SN 쥬얼리)씨의 줄질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학교대표로 뽑힌 두 학생의 실력은 이미 저보다 더 낫습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대회 전 까지는 계속 채찍을 휘둘러야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지난 8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 40회 국제기능올림픽 귀금속공예부분에서 유럽의 강호 이태리, 아시아의 일본 등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 낸 윤태식씨는 올림픽 후에도 쉴 틈이 없다. 귀국한 지 2주가 흘렀지만 휴식의 여유도 없이 후배들의 입상을 위해 지도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 17개국이 참가한 귀금속공예부분에서 한국은 공동 2위인 브라질과 이탈리아를 7점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주어진 과제는 도안을 보고 대회기간 4일 동안 브로치를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 주어진 부품으로 그날의 과제를 만들고 바로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었고 시간이 남으면 다음날 과제를 미리 준비하며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금메달을 따기 까지 윤씨의 준비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윤씨가 처음 귀금속공예에 발을 들인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2005년. 평소 모형제작, 조립 등에 손재주가 있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들었던 윤씨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기 위해 충남기계공고 귀금속과에 지원했다.
입학 후, 1학년 때부터 윤씨는 톱질, 줄질, 땜질 등의 기초부터 배우면서 각종 대회를 준비했고, 입학과 동시에 기능반에 가입하여 쉴 새 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윤씨에게 기능반 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1년 중 그에게 주어진 휴식일은 고작 10여일 정도.
윤씨는 "학교 수업이 4시반에 끝나면 곧장 연습을 시작해서 10시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대회기간에는 11시에서 12시까지 연습을 했는데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라고 했다.
이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귀금속공예 분야에서 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한 67년 이후, 4번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메달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이런 한국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는 유럽 팀의 견제가 계속 됐다.
윤씨는 "모양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럽의 심사위원들은 한국에 상대적으로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한국 심사위원님이 말씀하시더군요"라고 밝혔다.
유럽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평가로 자칫 금메달을 놓칠 수 있었던 윤씨가 목표한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유럽 참가자들이 따라오지 못한 '섬세함'에 있었다.
0.3mm의 오차마다 1점씩 감점되는 평가기준에서 한국인 특유의 섬세한 손재주는 유럽심사위원의 편파적인 평가를 뛰어넘기 충분했다.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가져다 준 윤 씨가 만든 금빛 브로치. 하지만 윤 씨는 브로치를 '공짜'로 가지고 오지 못했다.
"당연히 제가 만든 거니까 그냥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18K 진짜 금으로 되어있는 거라서 금값은 내고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하하."
윤 씨의 중지마디와 엄지손가락에는 유난히 굳은살이 많이 박혀있다. 윤 씨의 굳은살에는 단순히 피나는 연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윤 씨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친할머니, 형과 함께 살고 있다. 철없던 어린 손자들을 손수 키우며 고생하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올림픽에서 더욱 힘이 났다고 윤씨는 말했다.
귀금속 공예를 공부한 학생들은 졸업 후, 대부분 귀금속 제작회사에 들어가 디자인을 하거나 제조 업무를 맡는다고 한다. 하지만 윤씨의 목표는 ‘대학교수’. 귀금속공예도 분명히 이론적인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 이론을 무시하고 무조건 만들고 보자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한국 귀금속공예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윤 씨는 포부를 밝혔다.
“후배들이 더 나은 실력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지도하고 저도 실력을 더 키울 거예요. 2011년에 영국에서 열리는 41회 국제 기능올림픽때도 대한민국 귀금속공예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