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오리들이 헤엄치던 연못 주위로 자연 상태를 그대로 살린 산책로가 생긴다. 건물 외벽에는 태양빛을 한껏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넓은 창이 반짝이고, 에너지 효율은 일반 건물보다 50% 이상 향상됐다. 한 시간에 최대 1.1t의 목재 찌꺼기를 태우는 '바이오매스(biomass)' 발전소로 난방을 해결해, 도시 에너지 수요의 75%를 감당한다.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나머지 에너지 수요 25%를 상쇄(offset)하면, 도시 전체의 탄소 배출량은 '0(zero)'가 된다. 캐나다 서부 빅토리아 항(港)의 옛 공업단지 부지(면적 12만㎡)에 자리 잡은 '탄소 제로(carbon zero) 도시' 독사이드 그린(Dockside Green)의 청사진이다. 5억 캐나다달러(약 5600억원) 규모의 전체 프로젝트 중 35%가 진행됐다. 지난해 말 완공된 주거지역의 경우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도 분양률이 95%를 넘었다. 독사이드 그린뿐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 탄소 제로 도시가 속속 건설되고 있다.
'탄소 제로 도시'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0'인 도시를 말한다.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 대신 풍력·태양광·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며, 고효율 건축 설계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다.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교통수단을 써 자동차 배기가스도 줄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큰 도움이 되고 환경과 에너지 기술을 선점할 수 있는 데다 도시 경쟁력과 친환경 이미지도 제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사이드 그린의 주거단지 설계를 맡은 건축가 로버트 드루(Drew)는 신재생에너지 전문지 '리뉴어블 에너지 월드' 인터뷰에서 "주거지 한복판에 자연을 복원해내면서도 생활의 질은 끌어올린 미래 커뮤니티 개발 모델"이라고 말했다.
탄소 제로 도시의 대표 선수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 시티'이다. '마스다르'는 아랍어로 '자원'이라는 뜻. 매장량 기준 세계 4위의 석유 부국(富國)인 UAE 수도 아부다비가 '석유 이후 시대'의 주도권을 잡겠다며 추진하는 220억달러짜리 프로젝트다. 마스다르에는 탄소 배출과 쓰레기, 화석연료, 자동차가 없다. 전통 아랍 양식의 성곽으로 주변을 감싸고, 도시 계획도 건물을 좁은 골목 주변에 밀집시키는 아랍 양식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높였다. 물론 태양광(52%)과 태양열(26%) 등 100% 신재생에너지만을 쓴다.
중국도 빠질 수 없다. 상하이 인근, 충밍(嵩明)섬에는 둥탄(東灘) 신도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다른 탄소 제로 도시들처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형태로 개발된다. 완공 시점인 2050년이면 뉴욕 맨해튼의 4분의 3 정도 면적(약 86㎢)에 50만명이 살게 된다. 세계 1위 탄소 배출국인 중국이 환경오염국 이미지를 벗어 보려는 야심 찬 시도다.
신도시로 개발되는 다른 탄소 제로 도시들에 비해,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20년 넘게 차근차근 '탄소 제로' 목표를 향해 달려오며 '독일의 환경 수도'라는 명성을 쌓았다. 1974년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을 시발로, 시내 축구장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지으면서 시민 주주를 공모해 연간 입장권을 주는 등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정책이 효과를 거뒀다.
이밖에 고대 로마와 중세 이슬람 유적지가 어우러진 관광지 전체를 태양광과 풍력에너지에 기반한 그린 관광단지로 개발하려는 리비아의 '그린마운틴' 프로젝트도 주목된다. 마스다르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저명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Foster)가 주도하고 있다. 덴마크의 'H2PIA'는 아직 구상단계이지만, 풍력 강국답게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수소연료전지로 저장해 하나의 도시를 운영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