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스포츠레저 게임’을 표방하며 등장한 토토·프로토가 우후죽순으로 증가하는 불법 사이트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는 스포츠토토·프로토 관련 카페에는 연일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잃었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올라온다.
스포츠 경기의 승패나 스코어를 맞추면 짭짤한 배당금을 챙길 수 있는 토토·프로토.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지난 2004년 6월부터 현재까지 온라인 베팅이 허용된 사이트는 '베트맨'(www.betman.co.kr)이 유일하다.
◇ 불법 사이트와의 첫 만남
불법 사이트들은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토토’ 관련 카페에 가입해 회원 등급 요청 글을 올리면 하루 사이에 10개가 넘는 쪽지가 도착한다. 저마다 높은 배당률을 강조하며 네티즌을 유혹한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인기 많은 ‘승부식 프로토’(경기의 승·무·패를 맞추는 게임) 방식으로 축구 3경기에 총 5만원을 걸어 당첨(베팅한 모든 경기의 승·무·패를 맞춤)될 경우, 합법 사이트에서 대략 25만원을 받는다면 자신들의 사이트에서는 그의 몇 배를 벌 수 있다고 선전한다.
국내 프로야구, 농구, 축구와 유럽축구, 미 프로야구 몇 경기에 한정된 합법 사이트와는 달리 브라질, 폴란드, 터키, 아이슬란드, 중동 등 세계 각국의 스포츠 경기를 대상으로 해 24시간 실시간 베팅이 가능하다. 시기에 따라 아이스하키, 이종격투기, 심지어는 케이블채널의 스타크래프트까지도 베팅 대상이다. 1회차당 10만원 이하라는 금액 상한도, 만 20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도 없다. 호객을 위한 이벤트도 버젓이 진행된다. 입금 시 추가 충전액을 지급하거나, 무료 게임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자메시지로 매일 안부 문자나 이벤트 문자를 보내 고객을 관리하는 곳도 있다.
◇ ‘먹튀’ 사이트 기승
“돈을 따는 사람보다 잃는 사람이 많다”는 도박의 오랜 속설대로 베팅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돈을 잃기 십상. 그러나 불법 사이트에서는 베팅을 잘 하고도 돈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베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민번호, 휴대폰번호, 계좌번호를 기입해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다음 등록된 통장으로 운영자에게 송금해 잔고를 충전한다. 사이트에 따라 1주일에서 1달가량 베팅 실적이 없으면 강제 탈퇴 당한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가장 흔한 피해 유형은 2가지. 우선 관심이 집중된 경기에 배당률을 터무니없이 높게 잡아 네티즌들의 거액 베팅을 유도한 후 입금된 돈을 챙겨 도주하는 경우다. 한 포털의 토토 카페에는 “몇 달치 월급을 날렸다”, “수백만 원을 날렸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첨자를 제거하는 방법도 흔히 쓰이는 수법이다. 회원이 거액의 당첨금을 받게 되면 아이피를 삭제해 로그인을 방해하거나 강제 탈퇴시킨다. 원금마저 잃게 된 피해자가 다른 인적사항으로 재가입해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리면 “경쟁 사이트에서 헐뜯으러 왔다”고 누명을 씌어 탈퇴시킨다.
각 불법사이트 간의 경쟁도 치열해 포털 블로그나 카페에 “OO사이트가 불법 먹튀다”, “아니다”며 서로를 비방하거나 국가기관에 고발하는 촌극도 자주 벌어진다. 분쟁이 생겨 포털에 주소가 노출되거나 고발된 사이트는 신속히 도메인과 입금 계좌를 바꾼다. 취재를 위해 지난 2주간 가입한 8개의 불법 사이트 중 6개가 자취를 감췄을 정도로 신출귀몰했다.
◇ 베팅하는 순간 피해자이기 전에 범죄자
불법 프로토·토토 사이트가 독버섯처럼 생겨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 작년 7월 부산에서 검거된 운영자는 불과 20여 일만에 27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올해 4월 충남에서 적발된 5개 사이트 운영자가 6개월간 올린 부당이득은 506억원, 7월 제주에서 검거된 조직폭력배 일당의 8개월간 매출액은 55억원에 이른다. 이때마다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베팅한 상습 고액 도박자들 수십명도 함께 입건됐다.
1년 전 먹튀 사이트에 베팅했다가 1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은 고시생 권모(28)씨는 “베팅하는 순간 피해자이기 전에 범죄자”라면서 “하소연할 데도 없어 죽고 싶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온라인 도박에 참여한 것 자체가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점 역시 불법 사이트 운영자들이 노리는 점이다. 이들은 중국 등 해외에 인터넷 서버를 두고 대포통장으로 거래하며 단속망을 유유히 따돌리고 있다.
지난해 8,056건이었던 불법 온라인 사이트 적발 건수가 올 상반기에만 2만3,222건으로 급증했다. 그 중 98%가 불법 도박사이트.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의 매출 규모를 약 32조원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 송훈석(무소속) 의원은 “총괄 관리감독 기관이 전무해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우려된다”면서 “범정부차원의 불법 도박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