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윤지희(24·서울 서초구)씨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TV를 본다.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윤씨는 “이렇게 자꾸 꼬집으면 허벅지가 날씬해진다고 하더라”면서 “요즘 ‘꿀벅지’라고 불리는 유이(가수)가 부럽다”고 했다. ‘꿀벅지’는 꿀처럼 달콤한 매력을 가진 허벅지를 뜻하는 신조어. 적당한 근육이 돋보여 ‘찰벅지(차진 허벅지)’라고도 불린다.
요즘 네티즌들은 ‘사슴 같은 눈’이나 ‘칼날같이 오똑한 코’가 아닌 ‘허벅지’에 열광한다. 허벅지가 예쁜 연예인의 사진을 모아 블로그에 올리거나 ‘꿀벅지 연예인’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허벅지가 예쁜 여자 연예인’ 투표가 진행됐다. ‘구세대’에게는 허벅지를 두고 점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 하지만 이 투표에 참여한 네티즌이 1만1657명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꿀벅지’ 1위로 뽑힌 스타는 그룹 소녀시대의 티파니(20), 2위는 그룹 애프터스쿨의 유이(21), 3위는 가수 아이유(16) 순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비쩍 마르지 않은, 탄력 있고 건강한 허벅지라는 것. 네티즌들은 “요즘 글래머의 척도는 큰 가슴보다 탄탄한 허벅지”라면서 호응했다. 특히 수영선수 출신답게 건강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가수 유이는 남성팬들 사이에서 ‘허벅유이(허벅지+유이의 합성어)’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컴퓨터 미인에서 ‘부분 미인’으로 세대교체
1980년대만 해도 미인의 기준은 황신혜였다. 조각 같은 이목구비로 ‘컴퓨터 미인’이라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섹시 스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에 전지현은 모 전자제품 CF에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테크노댄스를 춰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요계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에는 바람불면 날아갈 것처럼 청순한 강수지 스타일이 ‘퀸(Queen)’이었다. 반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 추는 이효리 스타일이 대세였다.
사실 ‘섹시함’을 앞세운 여자 스타는 요즘에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얼굴’에서 ‘몸매’로 이어진 미인의 기준이 좀 더 디테일해졌기 때문. 한마디로 ‘부분 미인’이 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특정부위를 두고 순위를 매기는 행위가 성 상품화 논란을 불러올 수 있지만, 여성의 특정 부위만 두고 섹시함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미인을 바라보는 달라진 기준과 세태를 보여준다.
얼굴만 예뻐서는 미인 축에도 못 끼는 세상, 뒤태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최근 시상식 포토존에서는 “뒤로 돌아주세요”라는 카메라맨들의 요청이 쏟아진다. 여배우들은 뒤돌아 어깨에 턱을 살짝 기대며 돌아본다. 미리 짠 것처럼 똑같은 포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민망한’ 드레스가 인기였지만 요즘 드레스는 앞보다 뒤가 더 과감하다. 단정한 앞모습과 달리 엉덩이 근처까지 깊숙이 파인 드레스는 ‘반전’이 있어 더 아찔하다.
해외서도 관심… 영부인들 뒤태 도마에
배우 신민아(25)는 최근 급부상한 ‘뒤태 미인’이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비키니 몸매’ ‘다이어트를 해서 닮고 싶은 이상적인 몸매’ 등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CG(컴퓨터그래픽)가 필요없는 몸매로 더 유명하다. 컴퓨터로 보완할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몸매라는 뜻이다. 청바지 광고에서 신민아는 뒷모습을 유독 강조한다. 동양인의 체형이라 믿기 어려운 잘록한 허리와 볼륨있는 엉덩이가 완벽한 곡선을 만들어 낸다는 게 패션 관계자들의 말이다.
영국에서는 영부인의 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9월 6일 영국 데일리 메일 온라인판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와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부인인 셰리 블레어의 뒷모습을 비교해 올렸다. 몸에 꼭 맞는 정장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르는 사진은 민망할 만큼 적나라하다. 네티즌들은 “셰리 블레어의 뒤태가 카를라 부르니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반응. 브루니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 ‘패션 아이콘’으로 꼽힌다.
‘부분 미인’을 논할 때 개미허리도 빠질 수 없다. 그룹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그룹 카라는 ‘허리’로 가요계를 평정했다. 5명의 멤버는 가슴 바로 아래까지 티셔츠를 올려 묶어 허리를 강조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엉덩이와 허리를 흔든다.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명 ‘엉덩이춤’은 동영상이 빠르게 퍼지며 인기를 끌고 있다. 멤버 5명의 척추가 도드라질 정도로 잘록한 허리는 엉덩이를 볼륨있게 보이는 데 한몫한다.
부위별로 스타 몸매를 소비하는 신풍속도
남자도 ‘부분 미남’이 대세다. 미술 시간에 모델로 등장할 법한 ‘조각 미남’은 이제 명함도 못 내민다. 잘생긴 장동건·원빈의 시대에서 근육질 권상우·송승헌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치골 미남’이 사랑받고 있다. 미스터 코리아처럼 우람한 근육 대신 치골(양쪽 골반에서 가랑이로 이어지는 V자 근육)이 섹시한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골반이 드러나게 바지를 내려 입어 치골을 뽐내는 것은 남자 스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포즈다.
몸매에 대한 관심은 ‘몸매 성형’으로 이어진다. 대한비만체형학회 장지연 회장은 “불과 5년 사이 닮고 싶은 연예인의 기준도 달라졌다”고 했다. ‘김희선처럼 쌍꺼풀 수술해주세요’ ‘한가인처럼 코 세워 주세요’라는 요청만큼이나 ‘신민아처럼 예쁜 뒤태를 만들고 싶다’ ‘유이처럼 탄탄한 허벅지를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 늘었다는 것. 장지연 회장은 “요즘은 얼굴보다 몸매 성형에 대한 관심이 더 뜨겁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섹시한 몸매를 위해 들이는 돈만 한 해 10조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부위별로 스타의 몸매를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청림출판)의 저자 윤용인씨는 “각종 영상매체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만 보던 시절에 비해 대상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됐다”면서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익명성을 무기로 허벅지, 뒤태, 허리와 같은 특정부위에 대해 왈가왈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윤용인씨는 “‘섹시하다’는 말조차도 낯뜨거웠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몸매를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면서 “하지만 관음증적인 시선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