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지난달 고교 추천을 거쳐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신입생 150명 가운데는 과거 입시였다면 합격하기 힘들었을 학생도 상당수 들어 있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 3학년생 이모군은 전교 30등인데도 전교 1·2등을 제치고 학교 추천을 받았다. 이군에게 특별한 봉사경력이나 경시대회 입상경력이 있는 게 아니다. 교사 5명과 학부모 대표 1명으로 구성된 학교 추천위원회는 이군이 옥탑방에 사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학원 한번 안 다니고도 상위권을 유지해온 것을 높이 샀다. KAIST 입학사정관들도 이 점을 주목했다.
동국대사대부고는 2년여 동안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져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그 탐구 과정을 과학 스크랩북 2권에 담은 오장섭군을 KAIST에 추천했다. 부산 경혜여고 유연이양의 경우 학교에서 2년간 자율학습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자기 장기인 수학을 가르쳐주는 '수학반장' 역할을 해온 점이 평가받았다.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은 실업고 출신도 KAIST 합격생 명단에 포함됐다.
KAIST는 지난 5월 말 전국 651개 비(非)특목계 고교에서 학교당 1명씩 학교장 추천을 받은 후 2개월 동안 입학사정관 심사를 거쳐 모집정원의 16%인 150명을 뽑았다. 그 결과 합격생을 배출한 147개 고교 가운데 61%인 91개교가 2006년 이후 처음으로 KAIST 합격생을 낸 경우다.
지금까지 대학입시는 사교육을 통해 기계적으로 훈련된 성적 위주로 뽑다 보니 계층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말을 들어왔다. 또 상위권 대학들이 외고·과학고·자사고 출신을 선호하는 바람에 중학교를 특목고 입시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KAIST만 해도 매년 합격생의 90% 정도는 과학고 등 특목고 출신이었다.
KAIST가 올해 처음 도입한 교장 추천 입학사정관제는 과학고 아닌 일반고 학생들만 대상으로 했다. 고교마다 한 명씩 뽑았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편중되지 않고 많은 학교가 합격생을 배출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학생을 3년 동안 관찰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고교의 추천을 거쳤다는 점이다. 학생들을 한나절 모아놓고 치르는 지필고사나 5분, 10분의 면접으로 수험생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정확히 가늠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입학사정관제와 고교 추천을 결합시킨 KAIST의 입시 방식은 학생의 종합 잠재력을 평가하는 새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입력 2009.09.1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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