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가락을 편곡해 영국 작곡가가 가사를 붙인 자장가, 미국 개신교 찬송가에 수록된 아리랑…. 원로 지리학자 이정면(84) 미국 유타대 명예교수가 아리랑의 유래와 세계로 퍼져 나간 아리랑 이야기를 담은 영문서 《Arirang: Song of Korea》(이지출판사)를 펴냈다. 서울대 사범대 지리교육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1972년부터 유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 정년퇴직했다.
이 교수는 "아리랑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다가 아리랑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많이 전파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 교수가 보여준 자장가 악보에는 어머니가 병든 아이를 달래는 노래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 전통 민요(Korean Folk Song)라고 소개돼 있다. 이 노래를 편곡하고 가사를 쓴 이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말콤 사전트(Sargent· 1895~1967). 이 교수는 "사전트가 1960년대 동북아지역을 여행하면서 한국을 방문했거나, 아리랑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1990년 미국 연합장로교회에서 발간한 찬송가집에 아리랑이 〈Christ, You Are the Fullness〉라는 제목 아래 수록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작사자는 미국 미시간주 칼빈 칼리지 음악 교수인 버트 폴만(Polman). 이 교수가 아리랑이 미국 찬송가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묻자 폴만 교수는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 아리랑을 찬송가에 포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는 것.
이 교수는 헐버트, 알렌, 비숍 여사를 서구에 아리랑을 알린 선구자로 꼽는다. 이어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병사들을 통해 아리랑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설명한다. 미국 포크음악계의 대부이자 반전가수였던 피터 시거(Seeger)는 1964년 첫 라이브 앨범에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수록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2007년 아리랑의 고향 정선, 진도, 밀양 등을 찾아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기행》을 펴냈다. 이 책을 출간한 뒤, 아리랑을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위해 영문서 출간에 매달려왔다.
이 교수의 전공은 토지 이용계획과 인구이동이다. 유타대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유타주의 케네커트 주석 광산에서 일하던 한인 광부 411명의 명단을 찾아내는 등 미국 중서부 지역 한인 광산노동자의 역사를 발굴하기도 했다. 하와이에서 일자리를 찾아 미국 본토로 건너온 이들은 고된 광산일과 언어 문제 때문에 대개 며칠 만에 달아나버리기 일쑤였다. 이 교수는 "광산을 떠난 한인들의 다음 행로가 어땠는지 아직 찾아내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이 교수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고국이 그립거나 외로울 때 마음을 위로해주는 노래가 아리랑"이라면서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인 아리랑을 연구하는 것은 인문 지리학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서용순 이지출판사 대표는 "아마존 사이트를 통해 해외에 책을 보급하겠다"고 했다.
입력 2009.09.09.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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