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청년은 양쪽 어깨의 높낮이가 눈에 띄게 달랐다. 오른팔이 몸쪽으로 휘어진 탓에, 건반 위에 뻗은 오른손 엄지가 건반 쪽으로 기울어 기우뚱했다. 야외무대 객석에서 간간이 기침소리가 났다. 관객 400명이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 피아니스트 강대유(24·순천대 음악대학원 1년)씨가 올랐다. 그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Ravel)의 소품 '어릿광대의 노래'를 쳤다. 10개의 손가락이 실수 한 번 없이 경쾌하게 건반 위를 달렸다. 강씨가 마지막 음을 누르자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브라보!"

이날 연주회에는 서울시내 저소득층 어린이 100여명, 음악을 좋아하는 장애아 100여명, 그들의 부모와 교사가 참석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솟은 채 무대를 내려오는 강씨에게 40대 여성이 다가왔다. "우리 아들도 몸이 불편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연주 동영상을 구할 수 있을까요?"

강씨가 자신의 미니홈페이지 주소를 적어주며 "제 연주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전남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7층 피아노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던 강대유씨가 어머니 박한순씨와 함께 웃고 있다.

"오늘 연주한 곡은 마치 제 이야기 같아요. 어릿광대의 밝은 겉모습과 어두운 내면을 표현한 곡이죠. 저도 장애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둘 뻔했지만 누구한테 슬픔을 내색하진 않았어요."

강씨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어깨가 왼쪽보다 훨씬 높은 곳에 붙어 있었다. 그는 목을 좌우로 돌리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도 오른팔이 몸쪽으로 휘어졌다. 그는 두살 때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고 다섯살 때 오른쪽 어깨뼈를 깎아냈다.

고향은 전남 순천이다. 부모는 작은 문구점을 했다. 그는 아홉살 때 두살 위 누나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따라갔다가 흥미를 느꼈다. 또래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 때 강씨는 피아노를 쳤다.

집안 형편은 빠듯했다. 강씨가 2001년 전주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강씨의 부모가 하는 가게 근처에 대형 문구점이 생겼다. 부모는 가게 문을 닫고 1t 트럭을 사서 콩나물과 두부 행상을 했다. 한달 수입이 100만원 남짓했다.

아버지 강오섭(55)씨는 "1년에 1000만원씩 학비·생활비·레슨비를 대기가 버거웠다"고 했다. "그래도 차마 '돈 없으니 그만두라'는 말은 할 수 없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가 '피아노가 내 친구'라고 하는데…. 대학 가고 싶다는 딸에게 '포기하고 취직하라'고 했지요."

강씨의 누나 효정(26)씨는 수원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월급 100만원 중 최소한의 생활비만 빼고 전부 집에 부쳤다. 어머니 박한순(48)씨는 "딸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강대유씨가 지난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피아노학회 주최로 열린 우수신인연주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해가 바뀌자 다른 시련이 왔다. 어머니 박씨의 당뇨합병증이 심해진 것이다. 강씨가 고3에 올라가던 2003년 2월, 어머니는 끝내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전주에서 학교에 다니던 강씨는 "좌절감이 심했다"고 했다.

"속으로 '난 장애인이야. 어차피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못 될 거라면, 돈 많이 드는 피아노는 그만두고 무슨 일이든 하자' 생각했어요."

고향 집에 내려온 강씨에게 부모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며 레슨비를 쥐여 돌려보냈다. 부모는 아들에게 "지금 그만두면 너도 우리처럼 닥치는 대로 사는 인생이 된다"고 했다. 배움이 없으면 당장의 생활에 급급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고3 내내 강씨는 독하게 자세 교정 훈련을 했다. 자꾸만 몸에 붙는 오른팔과 옆구리 사이에 의식적으로 주먹 두개쯤 들어갈 만한 공간을 뒀다. 이 자세로 3시간쯤 피아노를 치면 팔 전체가 딱딱하게 굳고 손목이 벌겋게 부었다. 그래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만 빼고 피아노 앞에 붙어 있었다. 24시간 개방된 인근 대학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연습한 끝에 순천대 음대에 합격했다.

강씨는 지금까지 각종 피아노 경연대회에 8차례 참가해 3번 우승했다. 작년 한해 동안만 전국장애인예술제에서 대상을, 유학파와 국내 명문 음대 졸업생들이 겨룬 한국피아노학회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올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피아노학회 주최로 열린 우수신인연주회에도 참가했다.

강씨는 2007년부터 매주 토요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순천대 음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김모(10)군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작년 3월부터 1년간 강씨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충동장애가 있는 김군은 툭하면 욱했다. 주먹으로 피아노를 마구 내리치는 김군을 강씨가 타일렀다.

"선생님 오른팔 만져볼래? 좀 다르지? 태어날 때부터 이 팔을 못 썼는데 피아노를 치다 보니 지금은 멀쩡해. 너도 피아노를 친구로 만들어볼래?"

김군은 이번 여름방학 때 강씨에게 편지를 썼다. "목 짧은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저 이제 화도 잘 안 내고 피아노도 열심히 치고 있어요."

강씨는 올 2월 장애 없는 동급생들을 제치고 모교를 수석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꿈은 해외에서 공부한 뒤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스승 허정화(47) 교수는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들에 비하면 힘과 속도가 달리는 게 흠이지만, 연주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울림'이 강점"이라고 했다.

수원에서 반도체회사 생산직으로 일하는 강씨의 누나 효정씨는 "어렸을 땐 동생이 미웠다"고 했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왜 나만 못 가나' 싶었어요. 화가 많이 났는데 동생이 제게 문자를 보냈어요. '미안해, 누나. 꼭 보답할게'라고. 동생은 지금도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지만, 저는 몸이 불편한데도 열심히 사는 동생이 자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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