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허준(許浚·1546~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한의사협회는 1일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는 담화문을 냈다.

의사협회는 이틀 뒤 정반대 논평을 냈다. "'동의보감'은 '투명인간이 되는 법' '귀신을 보는 법' 등 오늘날 상식에는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동의보감'에 그런 내용이 있을까?

※주의: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어른도 책임 못짐

투명인간을 언급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동의보감' 잡병편(雜病篇) 잡방(雜方)의 '은형법(隱形法)' 항목에 나온다. 은형법이란 말 그대로 몸이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2004년 한 방송사가 그대로 실험해 봤지만 불발에 그쳤던 그 방법은 이렇다.

"흰 개의 쓸개와 통초(通草·말린 등칡의 줄기), 계심(桂心·계피의 노란 속 부분)을 섞어 가루로 만든 뒤 꿀에 반죽해 알약으로 먹으면 몸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가리워진다. 푸른 개의 쓸개가 더 좋다."

바로 앞 부분에는 '견귀방(見鬼方·귀신을 보는 방법)' 항목도 있다. "생마자(生麻子·역삼씨 생것)와 석창포·귀구(풀 이름)를 각각 같은 양으로 꿀에 반죽하고 달걀 노른자위 크기의 알약을 만들어 한 번에 1알씩 매일 아침 해를 향하고 먹는데 100일이 지나면 귀신을 볼 수 있다."

유체이탈(幽體離脫) 또는 분신(分身) 현상에 대한 치료법을 적은 듯한 곳도 보인다. 잡방편 괴질(怪疾)의 '인신작량(人身作兩·몸이 두 개로 돼 보이는 것)'이다.

"자기 몸이 2개로 돼 나란히 누워 있는 것 같이 느껴지면서 어느 것이 정말 자기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알아볼 수 없을 때가 있는데 혼이 나가서 생긴 일"이라며 "주자, 인삼, 백복령(白茯�E)을 진하게 달여서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가짜 몸뚱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연인을 위한 '사랑의 묘약'도 눈에 띈다. '영부부상애(令夫婦相愛·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하는 방법)'이다. "부부간에 의가 좋지 못할 때는 원앙새 고기로 국을 끓여서 알지 못하게 먹이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음력 5월 5일에 뻐꾸기를 잡아 다리와 대가리뼈를 차고 다니게 해도 된다."

'거투방(去妬方·질투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율무쌀, 천문동(풀 이름), 붉은 기장쌀을 각각 같은 양으로 해 가루로 만든 뒤 꿀에 반죽해 알약을 만들어 남녀가 다 먹으면 서로 질투하지 않는다"며 "꾀꼬리 고기를 먹어도 그렇게 된다"고 적고 있다.

잡병편 부인(婦人) 대목에는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법)'도 나온다. "임신 3개월이 됐을 때는 남녀가 구별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성별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석웅황(石雄黃·천연 비소 화합물) 한 냥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임신부의 왼쪽 허리에 두르고 있게 하고 ▲활줄 한 개를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임신부의 왼팔에 차고 있게 하고 ▲수탉의 긴 꼬리 3개를 뽑아서 누워 있는 임신부의 자리에 넣고 알려주지 않는다는 등의 처방을 소개했다. 물론 남녀 성별이 성(性) 염색체의 분배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훨씬 전의 기록이다.

잡병편 괴질 중 '교룡가' 항목은 영화 '에일리언'을 연상케 한다. "봄과 가을철에 용의 정(精)이 묻은 미나리를 먹으면 교룡(蛟龍·뱀처럼 생긴 상상의 동물) 병이 생기는데 엿 2~3되를 두 번에 나눠 하루에 다 먹으면 도마뱀 같은 것을 3~5개 토하고 곧 낫는다"는 것이다.

'육징'을 소개하면서는 "늘 고기를 먹고도 또 먹고 싶은 것인데 토하지 않게 하면 죽는다"고 했다. '발가' 항목에선 "머리털을 잘못 먹으면 뱃속에서 눈 없는 뱀 같은 것이 된다"고 적었다. 이런 것들은 음식물을 조심하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흉년에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사는 방법'도 있다.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일 때는 입을 다물고 혀로 아래 위 이빨을 핥으면서 침을 모아 하루에 360번 삼키면 좋다. 이런 방법을 점차로 연습해 1000여 번 삼키면 저절로 배가 고프지 않게 되는데 3~5일 동안은 좀 피곤하지만 이때가 지나면 점차 몸이 가벼워지고 든든해진다."

도대체 왜 이런 내용들이 한의학(韓醫學)의 금자탑이라는 '동의보감'에 실려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런 것은 '동의보감'의 내용 가운데 극히 일부분으로, 21세기의 기준만 가지고 책 전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상봉 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동의보감'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내용을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책"이라며 "허준 선생이 당시 의학을 집대성하려는 목적으로 민간에 떠도는 요법도 일부 기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형법의 경우 투명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도(道)를 닦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의학사 연구자인 신동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난치병·불치병 같은 문제까지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방법까지 다 기록해 그런 부분들이 보이게 된 것"이라며 "현대 의학 역시 50~100년이 지나면 뒤처지는 부분이 많으므로 '동의보감'의 가치를 낮게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