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가 내리던 어느 오후, 런던 외곽의 작은 지역 박물관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인근 윔블던 테니스박물관을 관람하는 길에 우연찮게 발견한 박물관인지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입구에 들어섰다. 예상했던 대로 허름한 박물관이었다. 그 동네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소개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조금 크다 싶은 정도의 가정집 규모였다.
전시장을 막 들어서려는 순간 열심히 전시관의 유리를 닦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하는 분이시구나. 관람객도 없는데 참 열심히 하시네.'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물이 전시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다가왔다. "Good afternoon, gentleman~!" 그러더니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우리 박물관을 찾아주셔서 영광이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니, 무슨 영광? 청소하는 분이 아니셨나?'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는 그 박물관이 있는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고, 그 지역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분이었다. "괜찮다면 제가 안내를 좀 해 드릴까요? 이 작품은, 1910년 우리 고장 출신의 화가 작품인데…." 나는 할머니의 꼼꼼한 설명 덕에 아무 의미 없이 지나칠 뻔했던 그 작은 박물관을 기분 좋게 관람할 수 있었다.
벌써 수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그때 설명을 들었던 작품도, 그 박물관의 이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관람객 한 명 없는 빈 박물관의 유물을 자식 돌보듯 조심스레 닦고 있던 그 모습, 내게 한 마디라도 더 설명을 해주려고 했던 열정에 찬 눈빛은 아직도 내 뇌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인들이 자부한다는 높은 문화의 힘, 그 힘의 원천은 대영박물관의 찬란한 유물이 아니라 작은 마을 박물관 자원봉사자 할머니의 미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