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육상 100m에서 9.58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는 소식(8월18일자 A2면)을 접했다. 마침 최근 유럽 출장 중에 이번 대회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TV에서는 육상 스타들의 이야기와 경기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관중으로 가득 찬 운동장에서는 함성이 이어졌다. 마라톤 풀코스를 20회 넘게 완주한 육상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부러운 마음으로 TV를 지켜봤다. 그러나 아무리 TV를 봐도 한국 선수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세계적 스타 선수들과 결정적인 명승부의 현장만을 쫓는 듯했다. 우리나라 같은 육상 불모지 선수들의 모습을 잡아줄 여유는 없는 것 같았다.
이를 보면서 마음 한쪽이 착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이 대회는 정확히 2년 뒤인 2011년 8월 대구에서 막을 올린다. TV 시청자만 40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2년 뒤 우리 국민은 2002년 월드컵축구 때와 같은 환희를 느낄 것인가, 아니면 우리나라 선수의 예선 탈락 장면만 실컷 보게 될 것인가. 한때 한국이 마라톤에서 세계 강국의 위치를 유지한 적이 있었지만 이젠 옛날이야기가 됐다. 대구 대회가 외국인들의 잔치로 끝난다면 우리는 잔칫상만 차려주는 신세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인생이나 경영이나 스포츠나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투자 없이 열매를 따 먹는 일은 불가능하다. 노벨상의 영예를 누리려면 수학과 물리 등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수학과 물리는 당장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금융공학·전자공학 등 첨단 산업의 씨앗이 된다. 스포츠에선 육상이 물리학과 수학의 역할을 한다. 뜀박질이 빠르고 점프력이 좋아야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여자 테니스 수퍼스타였던 슈테피 그라프는 테니스에 데뷔하기 전에 단거리 100m에서 발굴된 선수였다. 그의 아버지 피터 그라프가 딸을 테니스로 전향시켜 불멸의 스타로 키운 것은 유명한 일화다. 비약해 보자면 그라프는 육상이 만들어낸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육상에 대한 투자가 없으면 스포츠 전반이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의미다.
투자 없이 좋은 성과를 주문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음식의 재료가 시원치 않은데 맛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육상에 더 빨리 투자할수록 훗날의 열매는 달고도 다양할 것이다. 2년 후 우리가 무엇을 얻을지 지금이라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대구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년이다. '뭍의 박태환'을 찾아야 한다. 이제라도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잔치에 자원봉사만 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지 않을까. 육상 팬의 입장에서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