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땅 밑 사람들은 씁쓸함과 불안을 숨기지 못한다. 다음 달 초 역사 속으로 사라질 회현고가도로 주변 상인들 얘기다. 서울시는 남대문시장과 명동 사이 퇴계로에 위치한 폭 15m, 길이 460m의 회현고가도로가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남산 조망을 해친다"는 이유로 지난 7일부터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32년간 고가도로가 서있던 신세계백화점 앞 사거리에는 평면교차로와 횡단보도가 들어선다. 향후 교통과 미관 변화뿐 아니라 상권 일대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고돼 상인들은 각자 사정에 따라 환호하기도 하고 울상을 짓기도 한다.

◆신세계백화점 "가장 큰 혜택"

남대문시장 끝자락, 지하철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앞에서 20년간 카펫 가게를 운영해온 김희영(53)씨는 고가도로 철거에 대해 묻자 "아주 시원하다"고 했다. 오전 8시 막 가게 문을 연 김씨는 "퇴계로 반대편 가게들의 간판이 처음으로 다 보인다. 그동안 남산 경관을 가로막고 있던 시커먼 고가도로가 없어지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했다. 명동 쪽에서 남대문으로 넘어오는 유동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감추지 않았다. "비좁은 차도는 항상 막혀 있고, 건널목이 없어서 (명동에서 남대문으로) 건너오기 힘들었지요. 이젠 손님이 늘 것으로 기대합니다."

퇴계로를 사이에 두고 남대문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회현1동 상인들도 고무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길 건너편 시장이 바로 보이는 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서성행(65)씨는 "길 한가운데 고가도로가 딱 버티고 있어서 그동안 길을 건너기 힘들었다"며 "철거가 완료되면 남대문시장을 찾는 인구가 이쪽까지 퍼져 상권이 살아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가장 신이 난 것은 신세계백화점이다. 신세계 측은 10일 보도자료까지 내고 "신세계 본점이 고가도로 철거의 가장 큰 혜택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고가도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백화점 건물이 한껏 노출되는 한편, 명동 유동인구가 대거 유입돼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남윤용 마케팅 팀장은 "신세계본점과 명동상권 간 연결이 원활해지고 주변교통·외부환경이 크게 개선돼, 본점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인 지난 11일 회현고가차도 모습. 10월은 돼야 차선 정비 후 도로가 개통될 것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지하상가 상인들 "대책 내라"

회현고가도로 철거가 진행됨에 따라 회현지하상가 상인들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시가 고가도로를 없앤 후 횡단보도를 설치한다는 계획 때문이다. 현재 명동 쪽에서 남대문시장으로 걸어가려면 지하보도로 내려가 회현지하상가를 거쳐야 한다. 횡단보도가 생기면 명동·남대문 상권 유동인구는 대체로 지상으로 통행할 것이 뻔하다. 상인들은 "매출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둘째 치고, 회현지하상가 생존 여부 자체가 불확실해졌다"며 두려워하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상인회 측 관계자는 "차도를 개선한다며 왜 사람 다니는 길을 새로 만드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시민 편의를 위한다는 것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곳은 지하상가가 있는 특수한 상황이고 225개 상점 상인들의 생업이 달려 있습니다. 시 측은 '대(大)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구체적인 구제방안을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어요."

지하 상인들은 횡단보도 설치가 지난 30여년간 이곳에 형성돼 온 지하 상권을 하루아침에 굶겨 죽이는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10년 넘게 회현지하상가에서 수입 식료품을 팔아 온 한상배(70)씨는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40% 이상 준 상황에서 횡단보도까지 생기면 지하상가는 끝장 난다"고 했다. 지하 점포들 군데군데 '무단설치 횡단보도 지하상인 다 죽는다'라고 적은 벽보가 붙어 있었다.

서울시는 교차로 횡단보도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재문 시 도로시설계획팀장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설치 등 회현지하상가 활성화를 위한 각종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면서도 "지하상가 영업을 위해 횡단보도를 놓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공사 중 정체… 완공 뒤엔 8차로가

공사 때문에 요즘 회현고가도로 주변 차량 소통 상황은 답답하다. 현재 교통 통제구간은 명동방향 한쪽에만 적용되고 있어, 남대문 방향은 공사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긴 하다. 출근 시간대 남대문시장에서 명동까지 가는 데 족히 30분은 잡아야 할 정도로 막힌다. 이 정도 체증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것이 시민들 반응이다. 아침에 공덕동 집에서 남대문시장까지 1시간20분 걸려 왔다는 김희영씨는 "어차피 회현고가 주변은 혼잡하기로 악명 높던 곳 아니냐"며 "8차선 대로가 개통되면 오히려 예전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공사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겠다"며 공사기간에 종로·을지로로 우회할 것을 권했다. 시는 고가도로 해체 공사는 9월 초에 마치지만, 차선을 정비하고 개통하려면 10월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부이촌동 앞 도로와 동부이촌동 입구를 잇는 한강대교 북단 고가도로는 14일 해체 작업에 들어가 두 달 만에 완료되며, 용산역 방향에서 동부이촌동 방향 좌회전이 신설되고 일대 교차로 세 방향으로 횡단보도가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