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야 끈다, 벗어야 튄다, 벗어야 산다. 노출 마케팅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스타들의 섹시 화보는 기본. 네이키드 방송에다 트로트가수까지 상반신을 드러내는 홍보 동영상으로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한여름 햇살만큼 뜨거운 노출 경쟁이다.
올해 한국영화계는 이런 노출 신드롬과 거리가 멀다. 그 와중에 뜻밖의 배우 2명이 노출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평소 노출, 섹시미와는 거리가 먼 연기파 배우 송강호와 배종옥이다. 연기에 관한 한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두 사람은 '벗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둘 다 첫 노출이어서 더욱 뜨거운 시선을 받았다.
송강호는 '박쥐'에서 성기를 노출하며 화제를 모았고, 배종옥은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 중 '33번째 남자'에서 전라의 파격적인 정사신을 선보였다. 그러나 노출에 대한 평가와 여운은 사뭇 다르다.
배종옥은 '33번째 남자'에 배우 박화란으로 출연한다. 첫 장면부터 깜짝 변신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동생 의 남편과 화끈한 정사를 벌인다. 카메라는 그녀의 늘씬한 허리선을 훑으며, 침대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남녀의 몸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배종옥은 베드신에서 20대 못지 않은 탄력있고 매혹적인 몸매를 선보인다. 두꺼운 화장, 빨간 립스틱, 강렬한 눈빛 등 팜므파탈의 카리스마는 압도적이다. 평소 지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와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33번째 남자'는 에로영화가 아니다. '오감도' 다섯 편이 중견감독들의 에로스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초반 껄끄러운 사이였던 베테랑 박화란과 신인 여배우 김미진은 영화 후반부에서 의기투합한다. 그 반대편에는, 한 끼 식사의 희생자로서 감독인 봉찬운(김수로)이 있다. '33번째 남자'는 에로스를 미각으로 표현하면서, 여배우와 감독의 권력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의미를 확장하면,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무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배종옥의 파격 베드신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배종옥은 '오감도' 다섯 편 중에서 가장 뜨거운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베드신은 영화 촬영 장면임이 드러나면서 김이 빠진다. 꼭 벗어야 했는가, 리얼한 정사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베드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배종옥이라는 빼어난 배우의 연기 변신치고는 좀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오감도'의 진지한 제작 의도와도 다르다. 그래서 아쉽다.
두 달 전에는 송강호의 노출이 화제였다. 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남자 배우의 성기가 드러났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 노출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에서 상현(송강호)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로서 친구의 아내인 태주(김옥빈)를 탐한다. 수컷으로서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에 빠져 쾌락에 탐닉한다. 상현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 자신을 성자라고 믿고 따르는 신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폭로하기 위해, 성기를 노출한다. 여신도를 성폭해하는 척하면서 일부러 하체를 드러낸다.
이는 신부의 참담한 고백성사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이 성기노출이 불필요했다거나, 과잉 노출이라는 시비는 일지 않았다.
지난해 '미인도'에서 보여준 김민선의 정사신도 비슷하다. 여장남자로 살아온 신윤복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면을 벗고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전라 뒷모습 누드도 신윤복이 남자에서 여자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클립체위라는 기묘한 유행어까지 낳았던 이안 감독의 '색, 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영화에서의 노출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간단하다. 노출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배우들이 어디까지 노출하든, 어떤 정사신을 보여주든, 그것이 영화의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질문 속에 답이 있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