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한다고 해서 '미친 놈'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듣다보니 그럴 법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원이 사회 경험의 전부인 30대 초반의 남자가 시나리오 한번 잘 썼다고 해서, 영화감독까지 하겠다고 나섰으니 누구라도 그 무모함에 그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터. 국내 최초의 재난영화로 흥행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는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40) 이야기다. '두사부일체'와 '색즉시공'으로 흥행감독으로서의 명성을 날린 윤감독의 얘기를 듣다보면 뭔 별나라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그만큼 믿기 어려운 도전과 용기로 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누구라도 영화감독으로 인정을 해주곤 있지만, 그는 10년전만 해도 IMF의 거대한 파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약한 회사원에 불과했다. |
흥행영화만 욕심? 이젠'진정성 담고 싶어 |
사표 던지고 쓴 시나리오 직접 '메가폰' 연속 대박 후 세번째서 참패 |
▶도전의 삶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998년 광고회사 LG애드 전략기획팀에서 신규사업과 비즈니스컨설팅 일을 하던 직장인이었다. 물론 관심은 많았지만 영화제작에는 한번도 가까이 가본 적이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랬듯 그 역시 IMF의 높은 파고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1개월 동안의 무급휴직. 이 예기치 못했던 상황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신혼여행'이라는 제목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 시나리오는 1999년 태창흥업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덜컥 차지했다.
다시 두번째 시나리오 '두사부 일체'를 완성한게 2000년. 투자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한달이 넘도록 감독을 선정하지 못했다.
내친 김에 욕심을 낸 윤 감독은 "내가 감독하면 안되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주변에서 "미친놈"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이 정도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영화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로부터 이미 들었던 얘기다.
카메라 감독과 촬영 스태프에게 "나 이거 모르겠다"며 물어가며 영화를 찍었다. 이렇게 찍은 '두사부일체'는 대박이 났다. '색즉시공'도 이를 악물고 한 끝에 또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세번째가 문제였다. 한창 흥에 취해 '낭만자객'을 찍었지만 이번은 과했다. 윤 감독 본인도 흥분했고, 배우들도 오버가 심했다. 참패였다.
주위에서 시선이 싸늘해졌다. 가장 듣기 싫은 '쌈마이 감독'이라는 얘기가 다시 나왔다. 흥행만 아는 감독이란 얘기다. 주변에서 다 등을 돌렸고, '세상이 다 이런 거구나' 한번 더 속으로 곱씹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다. '색즉시공'을 같이한 하지원이 위로의 차원에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시 힘을 얻어 '1번가의 기적'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돈이요? 두사부일체 끝내고 보너스로 얼마를 받았을까요?"
지금껏 만든 5편의 영화중 1편만 실패하고 4편을 성공했으니 돈은 많이 벌지 않았을까. 그게 궁금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두사부일체' 연출료로 2000만원 받았어요. 근데 기자님. 그 영화 투자사는 20억 벌었습니다. 제가 보너스로 얼마나 받았을거 같습니까?"
(기자)"10%만 해도 2억원인데, 그 정돈 받지 않았나요?
"한푼도 못받았습니다. 지금 다들 돈 많이 벌었다고들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이게 영화계의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투자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어쨌거나 다들 한국영화를 위해서 기여하고 있으니까요."
▶해운대는 어떤 영화?
윤 감독은 영화를 처음 할 당시엔 "흥행도 되고, 돈도 벌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해운대를 찍으면서 흥행을 하면서도 '진정성'이 살아있고, 이 부분을 관객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해운대의 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인물은 엑스트라를 제외하고 500명 가까이 됩니다. 보통은 100~150명입니다. 1년동안 다들 너무나 고생많이 했어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사랑을 더욱 받고 싶어요."
▶배우들에 대한 평.
윤 감독은 가장 인상에 남는 배우로 하지원을 꼽았다. 배우와 감독의 의리가 지속되기 싶지 않지만, 인간적으로 힘들 때 큰 힘을 줬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해서는 '감히' 품평을 할 처지가 못된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처음 작업을 같이 한 설경구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터프함과 남성미의 대명사로 생각해서 무척 어렵게 생각했지만, 해운대를 찍으면서 그런 선입견을 싹 바꿨어요. 그렇게 인간적이면서 눈물도 많고, 마음이 여린 형이란 걸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윤 감독은 설경구와도 오래도록 같이 일할수 있을 것이라 했다.
여러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윤 감독이 얻은 영화관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정직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시련을 겪고 강해지면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정성이 통하는 영화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영화를 앞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