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15분이 되자 팬들을 일제히 "박지성"을 외쳤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느라 경기 감각이 떨어진 박지성을 선발 멤버로 쓰지 않았다. 박지성은 2년 전 맨유의 방한경기 때도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박지성이 후반 30분 경기장에 투입되자 관중석에선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경기 결과는 3대2. 순식간에 지나간 90분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한 여름 밤의 축구쇼'는 맨유의 승리로 끝났다. 애초부터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팬들은 최고의 축구를 현장에서 본 것 만으로 행복했다.

맨유는 단순히 영국의 축구 클럽이 아니라 ‘제 2의 한국 국가대표팀’이란 농담을 듣는다. 박지성이 뛰는 맨유는 그만큼 국내에서 인기가 높다.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 답게 이날 6만5000여 팬들이 운집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관중석은 완전히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2년 전 대규모 카드 섹션으로 맨유를 성원했던 팬들은 이번엔 특별한 응원을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맨유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서울 팬들도 숫자에선 밀렸지만 홈 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인 응원으로 대응했다.

맨유는 간판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와 18세의 신예 페데리코 마케다를 공격 선봉에 내세웠다. 마이클 캐릭과 리오 퍼디넌드, 파트리스 에브라 등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의 주역들도 대부분 스타팅 멤버로 나왔다. 하지만 경기 양상은 2007년과 사뭇 달랐다. 2년 전 전반에만 세 골을 허용하며 힘 없이 무너졌던 서울은 경기 초반부터 맨유를 거세게 몰아 붙였다. 서울은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데얀이 전반 23분 김승용의 크로스를 절묘하게 오른발로 밀어 넣으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미소를 짓고 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변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맨유는 8분 뒤 루니가 존 오셰이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 넣으며 동점골을 만들었다. 하지만 데얀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데얀은 전반 종료 직전 한 골을 추가했다.

퍼거슨 감독은 평소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라커룸에서 불 같이 화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그랬을까? 후반 경기에 나선 맨유 선수들의 몸동작은 달라져 있었다. 후반 12분 마케다가 크로스를 받아 여유 있는 개인기로 골키퍼를 제친 뒤 골 망을 갈랐고, 8분 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헤딩 골로 역전 골을 터뜨렸다.

이후는 박지성을 위한 시간이었다. 팬들은 세계 최고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고국 무대에 선 박지성에게 팬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고, 박지성은 쉴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특유의 경기 모습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