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등 남학생은 만화·과학·역사책을, 여학생은 소설·만화·전래동화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년조선일보 7월 4일자 보도

'선녀와 나무꾼' '혹부리 영감' '해와 달 이야기' '청개구리 이야기' '곶감과 호랑이' 등은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에게 친숙한 전래동화들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 동화들도 '그림 동화'나 '페로 동화' 같은 원전(原典)이 있는 것일까? 작고한 아동문학가 손동인씨는 "오늘날 간행되는 각종 전래동화집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의 '3대 전래동화집'과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동화집' ▲국어학자 심의린(沈宜麟·1894~1951)이 1926년에 낸 '조선동화대집' ▲독립운동가이자 작가 박영만(朴英晩·1914~1981)이 1940년에 낸 '조선전래동화집'이다. 그 책들은 모두 행방이 묘연했다.

권혁래 숭실대 교수가 최근 모두 발굴된‘전래동화 3대 원전’을 앞에 놓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조선동화집’‘조선전래동화집’‘조선동화대집’. 권 교수는 이 중 두 권의 책을 새로 출간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권혁래(權赫來) 숭실대 국문과 교수는 2003년 조선총독부의 '조선동화집'(집문당)을 번역 출간했고, 2006년에는 일본 와세다(早稻)대 직인이 찍힌 복사본 자료를 발굴해 '조선전래동화집'(한국국학진흥원)을 재출간했다. 남은 것은 '조선동화대집' 한 권뿐이었다.

이 책 역시 일본에 있었다. 부산 동천고 신원기 교사가 1937년에 나온 책의 4판을 근거로 최근 단행본(보고사)을 출간했고, 권혁래 교수는 1929년의 재판(再版)을 입수해 '민족문학사연구'에 논문 '1920년대 민담의 동화화와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을 발표했다. '3대 전래동화집'은 어떤 책들인가?

조선총독부의 '조선동화집'

오다 쇼고(小田省吾)를 중심으로 한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와 관학자들이 조선의 민담을 채집해 25편을 엮은 첫 한국전래동화집이다. 권 교수는 "이것은 오쿠라 신페이(小倉進平)가 1927년 처음으로 신라 향가를 번역한 사실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불편한 감정을 우리에게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애초 조선의 민속과 문화를 정리해 식민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총독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출간돼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순(柔順)이나 친절(親切)처럼 일본의 덕목이 미덕으로 나타나고 평면적인 선악구도와 교훈적 성격을 강조해, 설화의 해학성을 왜곡시킨 예가 많다.

그럼에도 한국 전래동화가 형성되는 초기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책으로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권 교수는 말했다. '물 속의 구슬'(의좋은 형제) '혹 떼이기 혹 받기'(혹부리 영감) '종을 친 까치'(은혜 갚은 까치) '겁쟁이 호랑이'(호랑이와 곶감) 같은 동화들은 이 책에 처음 등장한다.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

2년 뒤 나온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은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최초의 전래동화집이다. 경성사범 부속 보통학교 교사였던 저자가 83편의 작품을 채록한 것으로 광복 전후의 전래동화집에서 빈도수가 가장 높았던 '도깨비 방망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은혜 모르는 호랑이' 등의 원형을 담고 있다.

'멸치의 꿈'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수록돼 있다. 동해에서 3000년 동안 도를 닦은 멸치가 어느 날 '하늘에 올라도 보고 땅에 떨어져도 보고 덥다가 춥기도 하고 흰 눈이 날리기도 하는' 꿈을 꾼다.

망둥이는 '용이 될 꿈'이라고 해몽을 하지만 가자미는 '낚시에 잡혀 석쇠에 굽히면서 부채질을 당하고 소금이 뿌려지는 꿈'이라고 한다. 멸치가 화가 나서 가자미의 따귀를 때리자 가자미의 눈이 한쪽으로 몰리고 꼴뚜기는 눈을 뽑아 꽁무니에 차는 등 수 많은 물고기들의 외모가 지금처럼 변한다.

여러 동화 속에 '자동차' '경무청' '인력거' '전보'가 등장하는 부분은 우리가 옛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많은 전래동화들 중 일부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방증을 보여 준다.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

평남 안주 출신의 박영만은 소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평안도와 함경도를 돌아다니며 동화를 채집했다. 75편의 동화 중 '청개구리 이야기'(평양) '계수나무 할아버지'(함흥) '해와 달이 된 이야기'(안주) 등 60편이 북한 지역에서 전해 온 동화들이다.

이 책은 전래동화 특유의 구어체와 의성어·의태어를 잘 활용해 생생한 구연(口演)의 현장감을 드러낸다. '툴렁툴렁 다리가 떨어지더니… 제각기 오독똑오독똑 뛰어가서'(금이 된 귀신 이야기) '꺼불꺼불 상사말을 타고 장가를 갑니다'(까투리 이야기)라는 식이다.

박영만은 책 서문에서 "전래동화는 수천 백 년에 걸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고 들으시고 생각하신 흙의 철학이고 시(詩)"라며 "이것을 적당한 때에 손을 써서 모집하여 두지 않으면 따스한 온돌방으로부터 자취를 감추거나 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혼색물(混色物)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