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년 러시아 로마노프(Romanov)가(家)의 미하일 페도로비치 로마노프는 불과 16세에 황제인 '차르(Czar)'로 선출됐다. 이때부터 로마노프 왕조는 1917년까지 300년이 넘는 기간 러시아를 지배했다. 이 기간에 표트르 대제와 여제 예카테리나는 과감한 개혁으로 러시아를 바꾼 차르로 평가받는다.

러시아를 수백 년간 이끈 '권력의 상징'인 이 '차르'라는 직책이, 최근 미 정가와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됐다.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전례(前例) 없이 많은 차르를 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금까지 '배출'한 차르는 총 32명. 존 매케인(McCain) 상원의원은 최근 "로마노프 왕조가 300년간 18명의 차르를 배출했는데, 오바마 정부에선 불과 6개월 만에 32명의 차르가 생겼다"고 비꼬았다.

러시아의 황제를 뜻했던 '차르'는 현재 미국에선 여러 부처에 걸친 특정 이슈의 최고 조정·책임자를 뜻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기후 차르'인 캐럴 브라우너(Browner)가 행정부의 환경보호국·에너지부 등을 총괄하듯, 보통 한 명의 차르가 두 개 이상의 부처를 지휘한다. 미 행정부에선 1973년 닉슨 전(前) 대통령이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에너지 차르를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주무 부처 장관이 있는데도, 너무 다양한 분야에 차르 임명을 남용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멕시코 국경에서 마약 카르텔 문제가 불거진 지난 4월에는 앨런 베이슨(Basin)을 '국경 차르(Border Czar)'에 임명했고, 5월엔 대니 프라이드(Fried)를 '관타나모 폐쇄 차르'로 임명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준비를 맡겼다. 또 구제 금융을 받은 기업들이 지켜야 할 경영진 보수 제한 문제를 총괄하는 '봉급 차르(Pay Czar)', 미국 북부에 있는 오대호(Great Lakes)의 환경 보전·복원 문제를 총괄하는 '오대호 차르'까지 신설했다. 엄청난 차르 숫자에 대해 로버트 기브스(Gibbs) 백악관 대변인조차 농담한다. "마케팅 차르도 있었던가요? 있다면 그분으로부터 (브리핑) 메모를 받지 못했는데…."

비판자들은 수많은 차르가 제대로 임무를 다하는지 의문을 표한다. 이들은 행정부 고위직과 달리, 의회 인준을 거치지 않으며 대통령 이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다. 민주당 로버트 버드(Byrd) 상원의원은 지난 2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차르는 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을 감출 수 있어, 정부의 투명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마다 차르를 임명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기보다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시늉'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린다 파울러(Fowler) 다트머스대 교수는 "대통령들은 종종 사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차르를 임명한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차르가 많은 것은 오바마 정부가 서둘러서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욕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뉴트 깅리치(Gingrich) 전 하원의장(공화)은 9일 폭스뉴스 '온더레코드'에 나와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차르를 두는 것은 행정부의 혼란상(chaos)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