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남 순천의 시골마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터졌다. 110가구가 사는 한적한 마을, 노부부가 사는 농가 마당에 누군가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 병을 놓고 갔다. 이웃과 허물없이 지냈던 할머니는 한 톨 의심 없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마셨고, 2명이 사망했다. 목격자도, 범행 동기를 추정할 만한 단서도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우연의 일치일까. 석 달 전 충남 보령에서도 단체 관광을 다녀온 마을 노인 중 3명이 차례로 숨졌다. 부검 결과 3명 모두 청산가리에 중독돼 있었다. 누군가 음식물에 독물을 주입한 것이었다. 경찰은 마을 내부의 면식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고 현지발(發) 보도는 전하고 있다.
흔한 단순 살인일까. 하지만 나에게 두 사건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11년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독(毒)카레 사건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당시 도쿄 특파원이던 나는 일본 사회가 받은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사건은 일본에서 공동체를 타깃으로 한 '무차별 범죄'의 원조(元祖) 격이었다.
1998년 7월, 일본 중남부 와카야마현(縣)의 소도시에서 여름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축제는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이 복통을 호소하며 하나 둘 쓰러졌고, 71명이 사망·부상하는 참극으로 번졌다. 수사 결과 축제 음식으로 제공된 카레에서 비소가 발견됐다. 누군가 카레에 독극물을 혼입(混入)한 것이었다.
석 달 뒤 범인이 체포됐다. 같은 동네에 살던 37세(당시) 주부였다. 마을 사람들과 트러블이 잦아 따돌림당했던 범인이 원한을 품은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 대상은 특정인이 아니었다. 아무나 죽어도 좋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사건의 충격파는 컸다. 무엇보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무차별 범죄인 점을 일본 사회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범인은 동네 주민, 나아가 지역 공동체 전체에 독극물을 뿌렸다. 그렇게도 굳건하다던 일본의 '공동체 신화'가 내부에서 테러당한 셈이었다.
전문가들은 사건을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켰다. 사건이 벌어진 1998년은 일본에서 영·미식 구조개혁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종신고용의 전통이 무너지고 실직자·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사회적 탈락 계층이 형성됐다. '1억 총중류(總中流)'로 불릴 만큼 두꺼운 중산층으로 지탱되던 일본의 공동체 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일본에선 '묻지마 살인'이 꼬리 물고 이어졌다. 독극물 모방범죄가 잇따랐고, 번화가에서 행인에게 칼을 휘두르는 범죄가 빈발했다. 범인은 예외 없이 해고나 가족 붕괴로 공동체에서 밀려난 탈락자들이었다.
지난주에도 일본에선 충격적인 '묻지마 방화(放火)' 사건이 전해져왔다. 41세 남성이 오사카의 파친코(슬롯머신) 가게에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질러 4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실직자였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았다"라고 진술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건은 작년 10월 서울 논현동에서 터진 고시원 방화와 비슷하다.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칼을 휘둘러 13명을 살상한 범인 정모씨 역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탈락한 실직자'였다. 그는 경찰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살기 싫었다"고 했다. 공동체를 공격하는 무차별 범죄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다.
그저께 KDI는 도시 가구 100곳 중 14가구가 빈곤층이라고 발표했다. 이 우울한 통계를 보며 나는 전남 순천의 미스터리를 떠올렸다.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한 우리는 '청산가리 막걸리'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그나저나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경찰은 언제쯤 청산가리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고 범인을 잡아내려나.
입력 2009.07.15. 22:20업데이트 2009.07.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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