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4일 전격 사퇴하면서 검찰은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서열 파괴 인사였던 '천성관 내정'과 함께 천 후보자(사법시험 22회)의 사법시험 선배·동기였던 고검장급 8명이 전원 퇴진하는 바람에 사실상 지휘부 공백(空白) 상태를 맞고 있다. 천 후보자 발탁으로 예고된 대대적인 인사 태풍으로 뒤숭숭했던 일선 검사들은 천 후보자의 중도 낙마(落馬)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지휘부 없는 검찰

검찰총장은 물론 검찰의 최고위 간부진인 고검장급 9명(서울중앙지검장인 천 후보자 포함)이 모두 공석(空席)이 된 상황은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는 비상사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책임론으로 사퇴한 임채진 전 총장(사법시험 19회)에 비해 3기수나 아래인 천 후보자가 지난달 21일 전격적으로 발탁되면서, 천 내정자의 선배와 동기 고검장 8명은 14일까지 차례로 퇴진했다.

검찰은 직책상 대검의 선임(先任)부장(검사장)인 한명관 기획조정부장이 당분간 총장 대행을 맡게 되지만, 일선 고검과 지검 업무를 챙기고 박연차 게이트 파문과 천 후보자 사퇴로 혼란스러운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른 시일 안에 새로 총장 후보자가 내정된다고 해도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정식으로 집무하려면 최소 1개월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동안 검찰 조직의 동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 조직에서 지휘부의 유고(有故) 상황은 검찰 기능의 일부 마비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선 "청와대가 너무 서열 파괴와 조직 일신(一新)만 강조하다 이런 일을 빚은 것 아니냐"는 불만과 함께 "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끝낼 때까지 동기생들이라도 사퇴하지 않고 남아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오는 상황이다.

검찰 안팎에선 검찰이 당분간 대검 간부진을 중심으로 한 '집단 지도체제'로 운영되거나, 김경한 법무장관이 중요 사안을 챙기는 식의 비상시 운영방식으로 검찰을 견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직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총장 후보자를 제외한 고검장 이하 검찰 간부 인사를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할 말 잃은 검사들 "이럴 수가…"

천 후보자는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인 저녁 9시쯤 취재진을 피해 서울중앙지검 지하 주차장을 통해 퇴근했다.

천 후보자는 13일 실시된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의혹이 더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이날 오후 해명자료까지 내놓았지만, 결국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선 "의혹이 더 커지고 국민불신이 확산되기 전에 천 후보자가 결단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검사는 "자괴감이 든다"며 무력감을 표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도 문제이고,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냐"고 했다. 대검의 한 간부도 "임채진 총장 사퇴에 이어 천 후보자 낙마까지 올해는 검찰에 무슨 액운이 낀 것이냐"면서 "지방 검찰청들이야 좀 떨어져 있어 모르겠지만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앞으로 검찰의 자율권 등이 더욱 제약을 받으면서 검찰 조직이 툭하면 공격받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