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과 서봉수.

바둑팬들이 아니더라도 조국수와 서명인의 라이벌 열전은 언제나 장안에 화제를 몰고 왔다.

바둑의 산역사인 국수전에서 10연패를 달성했던 조훈현 9단. 조 9단은 4년마다 한번 열려 일명 바둑올림픽이라는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1988년)에서 중국의 영웅 네웨이핑(섭위평)을 꺾고 한국바둑을 세계 정상에 올린 한국바둑의 영웅이다.

네웨이핑 9단은 중-일 10번기에서 일본을 연파하며 중국 최고영웅의 반열에 올랐던 기라성이었다. 기자가 철없던 시절 베이징 외곽의 한 술집에서 폭력배에게 총을 들이당하는 곤경에 빠졌을 때, '내일 네웨이핑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로 위기를 모면했을 정도로 유명한 네웨이핑을 조국수가 꺾자 한국바둑은 그야말로 수직 상승했다. 바둑사에선 4년뒤 한-중 국교수립에 민간외교의 한 몫을 했다고 당당하게 평한다. 그 단추를 조국수가 뀄다.

그리고 서봉수 9단. 국수전과 양대 라이벌인 명인전에서 최저단(2단) 우승, 프로 최단기간 (20개월) 우승, 최단기간 도전권 획득(18개월) 등 불멸의 기록을 세우며 명인을 획득했다. 1972년 이후 5연패 등 명인전에서 7회나 우승, 명인전의 사나이요 영원한 '서명인'의 애칭을 얻었다. 서명인 역시 조국수 다음으로 제2회 응씨배에서 일본의 오다케 9단을 꺾고 우승했다.

조국수는 일본 유학파다. 반면에 서명인은 아마추어부터 잡초바둑으로 기재를 떨친 토종파, 즉 된장바둑의 영웅이다. 그런 서명인이 일본바둑의 살아있는 원형이자 자존심이라는 오다케를 상대로 판마다 다 죽은 대마를 살리는 대역전을 펼쳤다. 자칭 세계바둑의 중심이라고 외치던 일본이 한국의 실전 바둑, 즉 모양보다 힘을 자랑하는 한국바둑을 비로소 인정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서명인이었다.

서명인과 조국수, 특히 두 사람은 70~80년대 일본과 중국 조차 부러워하던 세계 유례없는 라이벌전을 펼쳤다.

일본 유학파 대 토종 된장바둑간의 조-서의 대결은 이창호, 유창혁 등 옛 4인방이 등장하기까지, 그리고 새천년 들어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강동윤 등 신예들이 위력을 떨치기 전까지 근 30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2009년. 잊혀진 조-서의 대결이 올해부터 색다른 이벤트로 다시 부활했다.

제1기 SKY바둑배 시니어 연승대항전이란 이름이다. 만 4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예선을 벌인뒤 본선진출한 16명을 8명씩 두팀으로 나눠 자웅을 겨룬다.

그런데 두 팀의 이름이 바로 '국수팀'과 '명인팀'이다. 조국수 대 서명인의 대결을 현대판 이벤트로 꾸몄다. 국수팀의 주장은 당연히 조훈현 9단, 명인팀의 주장은 서봉수 9단이다. 외국인 최초이자 여류 처음으로 국수전을 차지했던 루이나이웨이 9단은 국수팀이다.

국수-명인의 대결은 각 8위부터 대국을 시작해 이긴 팀에서 계속두는 연승전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10분에 40초 초읽기로 엄청난 속기바둑. 뚝딱바둑의 전형이다. 5000만원의 우승상금이 걸렸다.

지난 5일 제7국까지는 명인팀이 국수팀을 압도했다. 명인팀의 3장이자 일명 손오공처럼 빠르다는 서능욱 9단이 국수팀의 나종훈, 김일환, 장명한, 김종수 6단을 차례로 꺾고 4연승을 구가했다. 이로써 명인팀은 서봉수, 양재호, 차수권, 안관욱, 김인 9단 등 6명이 남았으나 국수팀은 조훈현, 오규철, 루이나이웨이 9단 등 3명만 남았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조국수 대 서명인의 무한 대결이 전혀 예측불허의 결과를 낳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