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봄, 미니시리즈 을 썼다. 그땐 내가 어렸다. 주인공 효동이(정준 분)를 통해서 내가 한 말이 이랬으니까. ‘소망이 깊으면 이루어진다’. 소망이 아무리 깊어도 외면당할 때가 있고, 한 때 그런 소망을 품었던가 싶게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쯤 슬그머니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걸 그땐 몰랐을까. 하루는 용기백배, 다음 날은 수렁 같은 절망을 오가며 데뷔 전 맵고 쓴 나날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소망이 깊으면 이루어진다’ 를 모토로 삼은 걸 보면 그땐 내가 정말 어리고 밝은 청춘이었나 보다.
장동건, 최진실이 나왔던 청춘드라마 . 학창시절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름 로망이 있었다. 매주 한 편씩 나가는 청춘드라마가 너무 해보고 싶었고, 이런 내 뜻이 받아들여져 드라마국 데스크에선 청춘물 주간단막극을 기획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요리가 들어가면 재밌을 것 같다는. 원래 요리에 관심이 있어 소문난 선생을 찾아 배우러 다니기도 했던 터라 쾌재를 불렀다. 한식, 이태리, 일식, 중식.... 등등 각 요리의 장단점을 연구하면서 요리 이야기에 등장해야 할 인물을 떠올려 봤다.
일단 뛰어난 미각을 가진 사람!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다 어떤 계기로 소명의 부름을 받는다. 그 소명을 거부하나 어떤 운명의 힘이 그를 ‘타고난 혀’가 필요한 곳으로 불러다 놓는다. 그를 일깨워줄 스승을 만날 것이고, 대결 또한 기다리고 있겠고, 적은 그보다 강할 것이다. 이런 구도의 이야기를 끌고 갈 가장 좋은 캐릭터를 생각하던 차에 데스크에서 두 번째 주문이 왔다. 불이 확 일어나고 허름한 주방을 가진 중국요리가 좋을 것 같다고. 일단은 내가 중국요리를 해봐야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당시 중국요리계의 대가 이향방 선생이 운영하는 중국요리 학원에 등록을 해 일주일에 두 번씩 요리를 배우러 갔다. 요리수업은 즐거웠다. 전가복과 류산슬은 의외로 쉬웠고, 짜장과 짬뽕이야 말로 내공이 필요한 음식이었다. 5개월을 꼬박 중국요리 학원에 다니며 실력을 키웠고, 서울의 유명한 중국음식점은 다 돌아다녔다.
나에게도 요리의 재능이 있는걸까... 착각하며 5개월간 수많은 중국요리를 만들었고, 대본 4부를 뽑았다. 드라마를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촬영이 시작돼도 방송 나가기 전까진 수많은 태클이 존재한다. ‘맛있는 청혼’ 을 준비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곳곳이 지뢰였는데 제일 먼저 터진 건 바깥에서 들려온 비보였다. 방송위원회에서 드라마 시간을 더 늘리지 말라는 방침에 따라 이 드라마가 들어가야 할 자리가 없어진 거다. 눈앞이 깜깜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준비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