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김밥에서 햄은 빼고 주세요."
아이샤(가명·26·이집트)씨는 햄 없는 김밥을 먹는다. K대학 국어교육 석사과정인 그녀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슬람 율법(샤리아) 때문에 아이샤는 평생 돼지고기 냄새조차 맡아 보지 않았다.
아이샤는 조심스럽게 김밥 속을 살폈다. 지뢰밭에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그리고 안심한 듯 입안에 넣었다. 다양한 음식 재료를 사용하는 한국에 대해 익히 들어 온 아이샤는 작년 여름 '돼지'가 들어가는 이름의 아이스크림 안 먹는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가 놀림 아닌 놀림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무슬림 수는 10만여 명, 한국인 무슬림은 4만 명을 넘어섰지만, 이슬람교, 중동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 사회적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장 이영태 교수는 "한국은 세계 13억명에 달하는 신자를 가진 이슬람교를 특이한 소수 민족만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점심 시간. 아이샤가 학교 친구들과 패스트푸드점에 들어 갔다.
“아이샤, 불고기 버거는 소고기로 만든 거니까 먹어도 되지?” 친구들이 물었다.
“닭고기, 소고기를 먹을 수 있긴 한데, 이슬람 율법대로 쿠란 구절을 외면서 단칼에 죽이지 않은 고기는 못 먹어” 아이샤는 되레 미안한 듯 이유를 설명하고 새우버거를 시켰다.
해산물은 구분 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 P씨는 “돼지고기나 개고기만 아니면 다른 고기는 문제없이 먹을 줄 알았다”면서 “흔한 닭고기도 그냥 못 먹는다니 무슬림이 한국에서 생활하기가 꽤 불편한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이태원 이슬람사원 근처 마켓에서 할랄 고기를 팔아요. 할랄 고기로 요리하는 식당이 있어 가끔 가기도 하고요.” 할랄이란 이슬람 종교 용어로 음식이나 행위에 있어 ‘허용된 것’이란 뜻이다. 아이샤는 이태원에 부족하게나마 할랄 음식점이 있어서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샤와 같이 한국에 사는 무슬림들은 가게에서 과자 하나를 살 때도 한국이슬람중앙회에서 선별한 할랄 제품 목록을 참고해 고른다. 돼지가죽에서 추출해 만든 젤라틴 성분이 있는 제품인지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무슬림 중 일부는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할랄 음식만으로 생활할 수 없어 샤리아의 예외 조항을 따라 식생활을 해결하고 있다.
무함마드(22·학생)씨는 작년 4월 한국어를 배우러 H 대학으로 유학왔다. “막 한국에 왔을 때는 매번 이태원까지 가서 할랄 마켓을 찾아 장을 봤죠, 그런데 이태원까지 매번 갈 수는 없었어요. 쿠란에서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 특별한 경우, 임시 방편으로 기도문을 외우고 나서 먹을 수 있다고 돼있어요."
그는 이제 "비스밀라 라흐만 라힘"으로 시작하는 쿠란 구절을 외우고 비(非)할랄 음식을 먹으며 현재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슬림은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해도 비할랄 음식을 먹을 때 심리적으로 용납되지 않아 율법에 맞춰 지켜나가고 있다고 한다. 아이샤는 “저도 무함마드처럼 닭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비율법적으로 도살 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힘들었다”고 심정을 말했다.
이태원 이슬람사원 앞에서 30년째 할랄 고기 정육점을 운영해 온 김철(51)씨는 “이태원에서 할랄 정육점은 하나뿐이고 마켓도 5개정도 밖에 안 된다”며 “이슬람 예배가 있는 금요일에 무슬림들이 대량으로 할랄 고기를 구입해 간다고”했다.
서강대 종교학과 김영경 교수는 "한국에 사는 많은 무슬림 사람이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음식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슬람 세계와 증가하는 경제적 교류만큼 문화 관습적 이해와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슬람에서는 돼지 고기를 금하는가?
돼지 고기를 꺼려하는 문화는 이슬람이 생기기 7세기 전부터 아랍 지역에 퍼져 있었다. 돼지는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민족이 방목해서 기르기에 용이하지 않고, 고기가 다른 것보다 더위에 쉽게 부패해 질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에 대한 이슬람의 율법은 기존에 존재하던 문화적 관습을 반영해 만들어 졌고, 오늘날에는 종교적으로 무슬림이 꼭 지켜야 할 의무로 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