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화성시 정남면 고지리에 사는 최재성씨가 뽕나무 가지를 두 팔에 가득 안고 어두컴컴한 창고로 들어섰다. 창고 안 곳곳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둠에 눈이 익자 뽕나무가 가득 얹힌 지지대 위에 하얀 벌레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누에다. 최씨는 "올여름 마지막으로 출하할 누에들"이라며 "대부분 누에가루같이 먹는 식품으로 소비된다"고 말했다.

1980년 중반 이후 산업화에 밀려 급속히 쇠퇴했던 양잠업이 '입는 양잠업에서 먹는 양잠업'으로의 변신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누에와 뽕잎, 오디의 건강 기능성이 검증되면서 양잠업이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부활한 것이다. 지난 4월 '기능성 양잠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이 같은 부활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화성시 정남면에서 40년째 누에를 기르고 있는 최재성(63)씨. 그는 “양잠업이 먹는 산업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누에를 기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는 양잠업에서 먹는 양잠업으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실크 등 입는 상품은 연 5억 달러어치가 수출될 정도로 최고의 수출 농산물이었다. 그러나 1976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감소, 1980년대엔 인건비 상승과 값싼 중국산 고치 수입으로 고사 위기에 이르렀다. 1976년 48만8000개의 양잠농가, 8만2900㏊의 뽕밭 면적이 2000년엔 3700개 농가, 1300㏊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1995년 누에가루에서 혈당을 낮추는 성분이 검출되고 1998년 누에 동충하초(冬蟲夏草)의 대량생산법이 세계 처음으로 개발되면서 양잠산업은 '입는 양잠에서 먹는 양잠'으로 변신하며 부활했다. 2000년대 초반 수컷 누에나방에서 천연 정력증강제가 추출되면서 누에는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천연 소재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기술 개발에 힘입어 먹는 양잠업 상품이 다양화됐다. 뽕잎차와 뽕잎국수는 물론 빵과 과자, 아이스크림, 두부에 이어 술과 음료수의 영역까지 누에와 뽕나무가 진출했다.

1969년부터 양잠업에 종사해 온 최씨의 삶 역시 이 같은 양잠업의 역사와 일치한다. 한창 양잠업이 인기였던 1974년에 그는 누에 2만마리가 든 상자 35개를 팔았다. 한 상자가 쌀 5가마에 상응할 때였다. 최씨는 "돈을 하도 잘 벌어 주머닛돈 가지고 땅 계약한다는 농담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최씨뿐이 아니었다. 당시 정남면 500여호 중 400여가구가 누에를 쳤다.

그러나 1980년대를 거치면서 누에 치는 가구가 하나둘 사라졌고 최씨만이 남았다. 최씨는 "먹는 양잠업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나마저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최씨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오디가 지닌 항독성 물질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오디의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100t이었던 오디 생산량은 작년 3244t으로 6년 만에 30배 이상 증가했다.

수원 농촌진흥청에서 잠사양봉소재과 소속 김가솔 연구원과 최문숙 연구원이 실험에 사용할 누에고치를 다듬고 있다.

◆양잠, 바이오기술로 날개 달고 재도약

양잠업은 최근 '먹는 산업'에서 '의료용 산업'으로의 변화를 통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작년 뽕밭 면적이 1900㏊로 2000년 1300㏊보다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생산 기반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농촌진흥청은 누에를 이용,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중앙대학교 의과대학과 공동으로 기억력과 학습력·집중력 증진에 탁월한 효과를 가진 두뇌활성물질 '피브로인 추출물 BF-7'을 개발했다. 또 최근엔 한림대의료원과 실크인공뼈를 개발하는 공동 연구에 들어갔으며 은나노실크·황금수의·기능성 식품 소재 등으로 제품 개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농진청 잠사양봉소재과 이광길 과장은 "양잠산업은 뽕나무의 저탄소기능·누에의 환경감시기능을 비롯, 고부가가치 신소재의 누에 관련 산물 등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우리 고유의 원천기술인 기능성 양잠기술을 통해 실크인공뼈, 누에의 생체공장화기술 등 식의약 소재화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1조원의 양잠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