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보〉(81~92)=바둑 십결(十訣) 가운데 신물경속(愼勿輕速)이란 게 있다. 대국할 때 경솔하게, 빨리 두지 말라는 뜻이다. 흔히 착점의 속도에 대한 경구(警句)로만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승부를 서둘지 말라는 의미가 강하다. 앞서 있을 때 신바람을 내다 과속으로 역전당하는 것, 비세일 때 조급한 생각에 무리를 범해 무너지는 것 모두 경계하고 있다.

우상귀 일대의 접전 결과 백이 대세를 휘어잡은 국면. 하지만 창하오는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도취된 듯 갑자기 적세 속에서 가속페달을 밟는다. △의 즉각 준동이 비극의 씨앗. 이런 곳을 움직였다는 건 만용 아니면 경적(輕敵)이다. 86에 87로 진로를 막힌 순간 아차 싶었을 것이다. 어느새 백 대마가 상대 포위망에 갇힌 채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86으론 참고도 5까지가 실전보다 나았으리란 중론이었다. 88이 또한 백돌 전체를 무겁게 만든 문제수로, '가'에 붙여 기대면서 타개하고 싶다. 91까지 되고 보니 스스로 폐석(廢石)을 키워 곤마(困馬)로 만든 꼴. 조금 전까지 백이 누리던 우세는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승부가 됐다. 서로 살 떨리는 육박전 모드로 돌아온 것이다. 전쟁터에서 때 이른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