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尊嚴死)'가 온통 화제로 떠오른 2009년 대한민국. 그러나 단 0.001%의 회생 가능성에 매달리며 '기적'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있다.

25일 서울 월계동 방 두 개짜리 임대 아파트 침대에 누운 박해림(여·26)씨는 초점 없는 눈길로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조영순(49)씨가 해림씨 몸을 모로 뉘여 기저귀를 갈 때 그녀는 마비가 안 된 한쪽 다리를 잠시 버둥대며 손가락을 꿈틀했다.

그러나 해림씨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의학적으로 소생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답 없는 딸의 이름을 부르고, 딸의 감각 없는 손을 부여잡는다. 조영순씨는 0.001%의 기적을 바라며 식물인간 상태인 딸을 7년째 돌보고 있다. 25일 서울 월계동 조씨 자택에서.

2003년 10월, 한의대 1학년 때 해림씨는 세균성 뇌수막염에 걸려 쓰러졌다. 병원에 갔을 땐 벌써 뇌세포가 다 죽어 있었다. 의사는 "손을 쓸 수 없다"며 '회복 불가능'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7년째 포기하지 못했다.

현재 해림씨는 인공호흡기 없이 스스로 호흡할 수 있어 당장 '존엄사'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합병증인 흡입성 폐렴 등에 걸려 어느 때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그녀는 지난 7년간 한두 달에 한번 꼴로 대학병원에 가서 인공호흡기를 쓰고 연명(延命)치료를 받았고, 그때마다 회복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든 다시 연명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주변에선 다들 그만 포기하라고 해요.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나 자식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저렇게 누워만 있어도 살아있어 주는 게 고마워요."

사업에 실패한 뒤 집을 나간 남편 대신 영양사 일을 하며 해림씨와 군대 간 남동생(24) 남매를 교육시켰던 조씨는 딸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뒀다.

조씨의 하루는 오로지 해림씨 위주로 흘러간다. 음식을 씹을 수 없는 해림씨를 위해 매일 묽은 액체 상태 치료식을 딸의 배에 꽂힌 호스로 흘려 넣어준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매일 수건을 세 개씩 빨아 몸도 닦아준다. 가래가 차서 폐렴에 걸리지 않도록 하루에 적게는 30번, 많게는 70~80번씩 기계로 목에 찬 가래를 빼 주는 것도 중요 일과다. 자신이 없는 동안 딸이 경련을 일으키거나, 가래가 목에 차서 쿨룩거릴까 먼 곳으로 외출도 못 한다.

지출도 만만치 않다. 조씨는 9개월 전 광진구 89m²(27평) 전세 아파트에서 나와 임대 아파트로 이사 왔다. 딸에게는 치료식(월 42만원)과 식염수·화장지 등을 합쳐 매달 63만원이 들어간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매달 지원받는 67만원의 대부분이 쓰인다.

여기에다 한두 달에 한번씩 합병증 때문에 중환자실 응급 치료를 받으면 한번에 200여만원이 나간다. 전세비 뺀 돈은 조금씩 사라져 이제 250만원이 남았다.

그렇게 딸 간병을 하다가도, 때로는 자존심 강하고 공부도 잘했던 딸이 저렇게 '단순히 생명만 이어가는' 상태로 누워 있는 걸 바라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렇게 엄마가 열심히 돌보는데, (딸이) 살려는 생각이 있으면 벌써 일어나지 않았을까"며 회의가 드는 때도 있다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 가족은 해림씨 어머니뿐은 아니다. 뇌종양에 따른 뇌출혈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6개월째 입원 중인 A씨(여·18) 가족도 마찬가지다. A씨는 뇌사(腦死) 상태로, 의식을 관할하는 대뇌와 호흡 중추가 있는 뇌간(腦幹)이 모두 죽어 있다. 대뇌는 죽었지만 뇌간 기능은 살아 있는 식물인간 상태보다 더 악화된 단계다. A씨는 인공호흡기를 쓴 채 코에 관을 꽂아 영양을 공급하고, 소변줄로 오줌을 빼낸다.

그 옆 병동에서 1년 넘게 치료 중인 B씨(85)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번 뇌출혈 수술을 받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연명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가족들은 모두 "가능성이 낮은 것은 알지만 치료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전국 병원에 입원 중인 식물상태 환자는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의학계는 추정한다. 지난달 대법원의 첫 '존엄사 인정' 판결로 존엄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상 제로(0)'의 가능성을 믿고 인공호흡기를 떼지 않겠다는 가족들도 적지 않다. 의학적으로는 바보 같은 일일지 몰라도, 생명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