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방식의 국내 첫 존엄사가 시행된 가운데 당사자인 김모 할머니(76)가 호흡기를 제거하고도 만 하루를 넘겨 자가 호흡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어 '호흡기 제거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1일 '호흡기 제거 판결'을 내릴 당시 김 할머니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했었다.

대법원이 규정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는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만으로는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는 것 등이 명백한 경우다. 김 할머니의 경우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놓여 있다. 호흡기를 제거한 김 할머니가 의학적으로 의식 및 생체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의견이다.

논란이 되는 것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상태에서 안정적인 자가호흡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 제거 후 짧게는 30분 길게는 2~3시간 이내에 숨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병원 측은 호흡기 제거 3시간 여가 지난 후 기자들과 만나 "김 할머니의 호흡이 약한 상태이지만 자가호흡을 하고 있다"며 "자가호흡 환자의 경우 앞으로의 상태를 예측하기 어려워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 예상을 뒤엎고 오랫동안 생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병원 측은 또 환자 측과 소송할 때와 마찬가지로 김 할머니의 상태를 사망에 임박한 단계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창일 의료원장은 "김 할머니의 상태를 세브란스 존엄사 가이드 라인 2단계로 판단한다"며 "영양공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호흡기 필요 없이 생명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3단계로 갈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상태는 현재 맥박 95, 호흡수 18, 산소포화도 96, 혈압 107~62 등으로 호흡기를 제거하기 전과 비슷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 할머니의 가족과 변호사 측은 할머니의 상태가 자연사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 측 신현호 변호사는 "우리가 법원에 주문한 건 할머니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자연사 할 수 있게 기계적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해달라는 것 이었다"며 "법원에서도 호흡기만 제거하라고 명령한 만큼 자연사 과정에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또 호흡기 제거가 바로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편견에 대해 반박 의견을 밝혔다.

신 변호사는 "외국 환자의 경우 호흡기 제거 후 10년 가까이 생존한 경우도 있었다"며 "할머니가 호흡기 제거 후 경련을 일으키거나 피를 토하는 등 고통을 겪지 않고 자가호흡을 통해 안정된 모습을 보여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주치의 박 교수는 "(인공호흡기) 관을 꼽았다 빼면 환자들이 가래 제거를 못해 가래가 기도로 넘어가 영향을 미친다"며 "(김 할머니도) 하루 정도 더 추이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의 바이탈 수치가 급격하게 악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경우 과연 존엄사 시행이 옳은 결정이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