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안악3호분 고분벽화. 말을 탄 인물이 북을 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던 고구려 북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한국토지공사 산하 토지박물관(관장 심광주)은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북쪽 연안 현무암 지대에 있는 고대 성곽 유적인 호로고루(瓠蘆古壘·사적 제467호)에 대한 3차 발굴조사에서 '相鼓(상고)'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고구려 토고(土鼓·북)를 비롯해 고구려 시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고 22일 밝혔다.

길이 80m, 높이 10m, 전체 둘레 400여m 규모의 호로고루 성은 현재 남한 지역에 산재하는 40여곳의 고구려 유적 중 기와 파편이 집중적으로 발견돼 삼국시대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고'라는 북은 13점에 이르는 토기 파편 상태로 출토됐으며 그중 하나에 '相鼓'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두께는 1.7㎝ 정도이며 회흑색을 띠고 표면은 보통의 고구려 토기처럼 마연(磨硏·표면을 문질러 윤이 나는 상태)을 했다. 북을 원래 모양대로 복원하면 지름 55㎝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며, 아가리 부분에 일정 간격으로 3줄의 구멍을 뚫어 가죽을 씌우고 끈을 묶어 고정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 연천군 호로고루 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북의 토기 파편들. 모두 13점이 출토됐으며 이 중 하나에 ‘相鼓(상고·점선 부분)’라는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심광주 토지박물관장은 "조선시대 때 편찬된 음악 전문서적 《악학궤범》에 '상고'라는 이름의 악기가 나오는데, 이 문헌에 따르면 원통 지름이 49㎝로 이번 출토품과 크기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고려사》에는 상고가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들어온 악기로 적혀 있지만, 이번 발굴을 통해 이미 고구려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심 관장은 덧붙였다.

고구려시대 고분벽화인 안악 3호분 벽화에는 기마인물이 북을 치는 모습이 나온다. 한국 전통음악 전문가인 김세종 다산연구소 연구실장은 "상고가 발견된 지점이 고구려 국경이라는 점으로 볼 때 적이 쳐들어올 때 신호로 치는 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송혜진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토고는 실제로 사용했다기보다 각종 의식에 사용한 의기(儀器)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또 건물 용마루 양쪽에 올려놓는 대형 장식기와인 치미 조각이 다수 발견됐고, 연꽃무늬 기와가 5점 발견됐다. 또 기와를 제작한 수량과 그것을 사용하고 남은 개수를 각각 기록한 산판(算板) 기와도 발견됐다. '○小瓦七百十大瓦○百八十用大四百三十合千…'로 판독되며 '○작은 기와 710개, 큰 기와 ○80개 중 큰 기와 430개를 사용하고 남은 것의 합계가 천○개다'로 풀어볼 수 있다(○은 미판독 글자). 이처럼 기와에 산판을 써놓은 것은 희귀한 경우라고 박물관측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