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지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늘."
삶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예순을 앞둔 노(老)문호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타계 직전까지 무려 23년간 집필에 매달린 이 책은 괴테의 성장기이자 일종의 영재 교육서, 역사책인 동시에 자전적 문학이 된다. 자식 교육에 헌신적이었던 아버지 덕택에 괴테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불어·영어·이탈리아어 같은 언어는 물론, 그리스·로마 고전과 피아노, 회화와 승마, 펜싱과 양잠(養蠶)까지 두루 익혔다. 괴테는 "본성, 교육, 환경, 습관이 나를 모든 조야한 것들로부터 떼어놓았다"고 적는다.
천연두를 앓고, 까먹은 시간까지 두 배의 학습량을 내주는 아버지를 피해 종종 외가로 달아났지만 "문법은 내 눈에 오로지 자의적 법칙으로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일찌감치 영특함을 보였다. 새 포도주도 시간이 흐르면 똑같이 귀하고 맛있는, 묵은 포도주가 된다는 가르침 덕분에 당대 화가들의 작품에 눈 돌리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이 문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을 아들 세대에서 실현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아버지들의 숙원"이라고 기록한다.
어떤 가족사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18~19세기 독일의 미시사(微視史)이기도 하다. 괴테의 7세 생일이 지났을 때,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가 작센에 침입했고 유럽 전체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편으로 나뉘면서 7년 전쟁이 발발했다. 황실 고문을 역임한 아버지는 프로이센에 동조했지만, 프랑크푸르트 시장을 지낸 외조부는 오스트리아 쪽으로 기울었다. 견해차는 가족을 갈라놓았고, 부친 편을 들었던 괴테는 "나의 영웅(프리드리히 2세)이 잔인하게 비방당하는 것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외가에 가기를 꺼렸다. 문호는 이때부터 "대중에 대한 무시, 대중에 대한 경멸"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이렇듯 계몽에는 배제와 차별의 시선이 배어 있다.
장밋빛 유년의 기억은 성장과 더불어 뼈아픈 실연의 기록으로 변한다. 짓궂은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던 괴테는 그 대상이었던 그레트헨을 실제 연모하게 된다. 편지의 초안을 쓰다가 그레트헨 앞에서 들켜버린 청년 괴테는 "자기가 무한히 사랑하는 아가씨에게서 사랑의 확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라며 넌지시 탄식한다. 훗날 괴테는 "내 생애에서 그토록 혼란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고 기록하지만, 그 혼돈마저 숱한 걸작의 밑거름이 되었으니 대문호의 실패한 연애담을 훔쳐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나의 삶에서, 시와 진실'이 원제(原題)인 이 자서전은 26세 청년기에 멈춰 있지만, 그 이후는 우리가 알듯 문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