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방송인 최호진(42)이 뉴요커로서 역동적인 새 삶을 살고 있다.
1987년 KBS 공채 12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그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 '당신이 그리워질때' 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는 1997년부터 리포터 겸 MC로 변신했다.
지금도 많은 시청자들은 KBS-1TV의 '세상은 넓다'의 최호진을 기억한다. 무려 10년간 매일 진행을 했기 때문이다. 또 KBS-2TV에선 주1회 아침 생방송으로 나간 '최호진의 별미기행'을 12년간 진행했다.
EBS-TV에서는 독거노인들의 집을 고쳐주는 '효도우미 0700'에도 출연하는 등 매주 3~4개 프로를 오가며 정력적으로 방송 활동을 하던 그가 돌연 시청자들의 눈에서 사라진 것은 2003년 8월이었다. 이렇다할 마무리 인사도 없이 사라져 당시 모 스포츠신문에는 '최호진 행방불명'이라는 웃지 못 할 기사가 크게 나기도 했다.
갑작스런 하차는 어머니의 병환 때문이었다. 최씨의 형 초청으로 미국에 간 어머니가 입국 수 주 만에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미국행 비행기를 탄 그는 한 두 달만 있다가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어머니의 병세가 생각보다 심해 차일피일 귀국을 미루게 됐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치료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했고 형과 함께 산타모니카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책임지랴, 어머니를 돌보랴 한국에 들어갈 엄두를 못냈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들어가야지 하다가 1년, 2년이 지났어요. 그러다 시간이 너무 흘러 나중엔 방송에 복귀하고 싶어도 안되겠더라구요."
그러던 중 평생의 반려를 만났다. 박지영 씨였다. 공인세무사(EA)인 그녀와 2005년 결혼하면서 미국 정착을 결심했다.
그의 인생에 또 한번의 변화가 닥친 것은 2006년 6월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부동산전문가의 권유로 뉴욕으로 건너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것이다.
이미 그전에 모기지 관련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회가 동했다. 넓은 세상에서 부동산을 취급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넓다'를 통해 겪은 넓은 세상이 바로 '세계의 수도' 뉴욕이었던 것이다.
가장 급한 것은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을 따는 일이었다. 뉴욕시는 뉴저지주와 인접해 자격증도 2개 주 것을 딸 필요가 있었다.
"뒤늦게 시험공부하느라 애 많이 먹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담 쌓은 영어공부였으니 오죽했겠어요?"
뉴욕 자격증 시험은 2007년 한 번에 통과했지만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뉴저지는 3번 실패 끝에 2008년에 합격했다.
현재 그는 재미사업가 남문기 미주총연합회장이 운영하는 뉴스타 부동산그룹의 에이전트로 맨해튼 32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웨스트 맨해튼과 호보큰과 에지워터, 저지시티 등이 있는 이스트 뉴저지가 그의 책임 구역이다.
그는 향후 미국의 부동산전망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최호진 씨는 "현재 가격대가 무릎까지는 내려 왔어요. 주택의 경우 40만달러대 이하는 아주 거래가 활발한데 50만~80만 달러대는 잘 움직이지 않네요. 리스팅에서 장기 대기가 많아요"라며 부동산 침체가 연말까지는 갈 것으로 내다봤다.
방송인이라는 경력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됐을까. 뜻밖에 전혀 아니었단다. 고객들이 '탤런트하던 사람이 제대로 집을 팔겠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한 단체활동도 하고 성실함을 앞세워 고객들의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지난 2월부터 그는 미동부 유일한 한국어라디오방송 KRB(대표 권영대)에서 '최호진의 맛있는 미국'을 진행하고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시간동안 왕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버무린 입담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베테랑 방송인이지만 라디오 단독진행은 처음이었다. 그는 "한 동안 정말 떨렸다"며 "KRB가 동부 한인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방송이어서 그런지 프로그램을 시작하자마자 청취자들의 격려가 많이 와 깜작 놀랐다"고 말했다.
청취자들의 높은 호응 속에 그는 6월부터 로스앤젤레스의 미주중앙방송과 합동으로 이원생방송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역시 탤런트 출신인 박혜란의 '라디오가 좋다'와 함께 기획한 '퀴즈 동서지간'이다.
미주한인방송으로는 사상 처음 매일 합동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퀴즈 동서지간'은 뉴욕과 LA의 청취자들이 나와 퀴즈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방송 열흘 만에 동서부 한인사회의 화제로 떠올랐다.
마이크를 잡았는데 본격적인 방송복귀의 미련은 없을까. 지금도 탤런트 동기인 최수지를 비롯해 전인화 전광열 등 옛 동료들과 '세상은 넓다'의 박정옥 PD 등 지인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는 "큰 욕심은 없어요. 부동산전문가로 미주동포사회에서 잘 자리매김하고 KRB의 애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노창현특파원 rob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