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어느 날. 이중명(李重明) 에머슨퍼시픽그룹 회장은 힐튼남해골프앤스파리조트 커피숍에서 하영재 남해군수(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와 마주 앉았다. 하 군수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해해성고등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남해에 역사가 50년이 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생 수가 모자라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 농촌 인구가 계속 줄어들다 보니 한 학년에 한 학급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정말 큰일 났다."
남해군은 비교적 성공적인 지방자치단체로 알려졌다. 군내에 천연잔디 축구장을 만들어 전지훈련지로 각광을 받게 만든 곳이 바로 남해군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힐튼남해골프앤스파리조트 역시 유치했지만 인구 감소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남해해성고는 힐튼남해리조트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남해해성고는 2004년 농어촌자율교로 지정 받아 운영되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학생수 감소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남해해성고가 문을 닫게 되면 남해군의 미래도 암울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 회장은 힐튼남해리조트와 이웃해 있는 남해해성고 사정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남해해성고의 실정을 전해 듣고는 이 회장은 그 자리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
"그 학교, 내가 인수하면 어떻겠습니까?"
하 군수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남해해성고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
이 회장은 2006년 3월 28일 남해해성고 재단인 해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다음날인 3월 29일 이 회장은 이사장 자격으로 남해군 남면 평산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첫 출근을 했다. 이사장실에는 교장, 교감을 비롯해 학교 관계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실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골프리조트 업계의 마이더스’로 불리는 이 회장이 시골학교 재단이사장으로 학교 관계자들과 상견례를 하는 자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양희중 비서실장에게 물을 떠오라고 지시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양 실장은 이 지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양 실장은 학교 매점에 가서 커다란 고무 대야를 구해 급식소에서 물을 받아 들고 왔다. 이 회장은 물을 들고 아무 말 없이 김석환 교장(현 해성중학교 교장) 앞으로 다가가 김 교장의 양말을 벗겼다. 그리곤 5분 동안 정성스럽게 김 교장을 발을 닦아줬다. 예기치 못한 광경에 몇몇 교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김 교장의 발을 다 닦아준 뒤 이 회장은 입을 뗐다.
“학교는 교장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교장 선생님 발을 닦아준 것처럼 우리 학생들도 똑같이 사랑과 열정으로 보살펴 주십시오.”
그로부터 3년.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는 1학년 4개 학급으로 불어났다. 2009학년도 신입생 모집에 전국 140개 학교 학생들이 지원했다. 전교생 320명은 남해군 96명, 경상남도 84명, 서울 38명, 기타 지역 102명.
남해해성고가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크게 두 가지. 파격적인 장학제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남해해성고 측은 졸업생이 서울대와 연세대에 진학할 경우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또한 고려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치의대·한의대에 입학할 경우 2년간 등록금을 제공한다.
지난 6월 2일 오전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8층 에머슨퍼시픽그룹 회장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에머슨퍼시픽그룹은 금강아난티골프리조트, 힐튼남해골프앤스파리조트, IMG골프클럽, 중앙골프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중앙골프클럽을 제외한 모든 골프리조트는 전문 관리업체에 위탁 경영을 하고 있다.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모든 기업인이 육영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 사업에 뛰어든 배경이 궁금했다.
혹시 남해해성고를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 중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교육 사업이라면 집사람이 언제나 찬성했습니다. 돈은 어느 정도 벌면 더 벌려고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요. 가치 있는 데 써야죠."
집안에 교육 분야에서 종사하신 분이 있었나요. "제 고향이 충남 부여인데 할아버지가 교육감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셨죠. 내 몸 속에 그런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7남매 중 다섯째였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안이 굉장히 어려웠죠. 그래서 힘든 환경에 처한 학생들을 보면 저의 옛날 모습이 떠올라 견디질 못합니다."
부친이 교장을 지냈으면 지방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인데 고교 1학년부터 어려웠다는 얘기가 언뜻 납득하기가 어려운데요. "(이 질문에 이 회장은 즉답을 피했다. 기자가 다시 재촉하자 그제서야 말을 이었다) 교장으로 퇴직한 아버지께서 그만 사기를 당하셨어요. 퇴직금 날리고, 집 날리고 …. 그 이후 대학 다니며 군대 갈 때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죠. 교사와 군 출신들이 사회에 나오면 가장 사기를 많이 당한다고 하죠?(웃음) 아버지께서 연탄집게 공장을 차렸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인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밤에는 차들이 지나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지잖아요? 거리를 걷다가 차가 획 하고 지나가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한 걸음만 앞으로 디뎠으면 이 고통이 끝나는데' 하고 생각했었지요."
맨주먹으로 성공하신 분들은 자신이 성장한 고향의 학교에 지원하는 게 보통인데요. “(웃음) 마음을 두면 거기가 고향이지, 고향이 따로 있나요? 남해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요. 이탈리아 해안가 부럽지 않아요.”
이사장 첫 출근 때 교장 발을 닦아준 것은 놀라운 발상입니다. “출근 전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남들은 내가 골프리조트 업계의 ‘마이더스 손’이라고 하는데 사업을 한 것처럼 학교도 열성적으로 하면 그런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날 교장 선생님 발을 닦아주면서 ‘학교는 교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런 방법으로 전달한 겁니다. 저는 사장들한테도 어머니 발을 닦아드리라고 권합니다. 그게 말하긴 쉽지만 하기는 어려워요.”
이 회장의 또 다른 명함은 지역범죄예방위원. 이 회장은 수년전부터 검사들과 함께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 세족식(洗足式) 행사를 해오고 있다. 지난 3월 30일에는 대전 지검 검사들과 함께 대전교도소를 찾아 재소자들의 발을 씻겨줬다.
국내 유명 대학에 입학하는 졸업생들에게 4년 등록금과 2년 등록금을 지원하는 장학제도는 정말 파격적입니다. “(웃음)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게 아닙니다. 교직원 자녀들도 회사 직원들과 똑같이 대학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학교가 발전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2009년 현재, 4년 등록금을 지원 받는 학생은 3명이고, 2년 등록금을 받는 학생은 6명이다. 학교 측은 올해부터 파격적인 장학제도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기대가 크다.
홈페이지에 있는 이사장 인사말 중에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사람 만들어주고 대학까지 보내주는 학교’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공교육 붕괴를 말하는 상황에서 학교에서 ‘사람 만들어준다’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게 인성교육이죠. (세상이) 공부를 잘해 좋은 학교만 간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지인과 교사들을 총동원해 학생들의 부모 역할, 친구 역할, 누나(오빠) 역할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들을 위해 멘토링 제도를 도입, 2006년 여름에 멘토-멘티 결연식을 가졌습니다. 한동안 멘토링 성과를 보고하게 했는데 이제는 완전 정착이 됐어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기숙사 자랑이 많던데요. “처음에 학교를 맡고 보니 지역 출신 아이들 중에 부모 없는 가정의 애들이 꽤 많았어요. 그 아이들 공부를 시키려면 우선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줘야 했어요. 그래서 기숙사를 대리석도 깔고 호텔처럼 지어주었습니다. 사감이 따로 있지만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교대로 자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에는 취침 시간을 밤 10시로 정했는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12시까지로 늘렸습니다. 애들이 죽기살기로 공부합니다.”
기숙사 이름은 ‘덕일 드림 학사’. 이 회장이 사재 42억원을 출연해 건설했다. ‘덕일(德日)’은 매일 매일 덕을 쌓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이 회장이 지었다.
남해해성고는 바닷가에 자리잡아 자연환경이 좋습니다. 이는 반대로 문화 혜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만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이사장 취임 이후에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좀 더 멀리 가고 싶다고 해요. 그래서 2007년에는 아시아나항공에서 항공료를 할인 받아 1~3학년 전교생을 4박5일간 일본 돗토리현에 수학여행을 보냈습니다. 학생 1인당 10만원만 받고 나머지는 재단에서 지원했습니다. 현지 숙박은 일본 친구를 통해 홈스테이를 주선했습니다. 홈스테이 끝나고 떠나는 날 돗토리현 공항이 울음바다가 되었죠. NHK를 비롯해 일본 언론이 크게 보도했습니다. 또한 남해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게 하려고 명사 특강을 1년에 4~5차례 주선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남해해성고에 내려와 특강을 한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스콧 레인즈 박사,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이 그들.
지난 정권에서 일부 사학 재단의 비리로 인해 전체 사학 재단이 매도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데요. “얼마 전 학교에서 교장·교감을 새로 뽑았습니다. 재단 이사장으로서 저는 교감을 교장으로 승진시키고, 교무부장을 교감으로 발탁했어요. 전혀 상상도 못한 인사였지요. 내부 승진 시키고 나니 학교에 생기(生氣)가 돌고 있어요. 재단 이사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친척이라든지 아는 사람을 (교장·교감) 시켜서는 안 되지요.”
학교 재단이사장을 골프리조트 사업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사업해서 돈 버는 것보다 육영사업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게 보이잖아요. 학교가 틀이 잡혀 잘 되어가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 이중명
1943년 충남 부여군 구룡면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를 거쳐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ROTC 중위로 전역했다. 이후 건설회사에 들어가 롯데호텔, 극동빌딩 등 건설현장소장을 맡았다. 1979년 '샌드위치파넬'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판매회사를 설립했으나 1982년에 문을 닫았다. 이후 1992년까지 두 차례 더 실패를 맛봤다. 1995년 중앙관광개발 회사를 설립, 골프리조트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