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젠닛쿠(全日空·ANA)항공사 소속 여객기. ANA는 All Nippon Airways의 약자다.

이웃나라 일본의 국명 영어 표기와 관련된 문제를 보자. 일본의 영어 표기는 ‘JAPAN’이고 우리말로는 ‘재팬’ 또는 ‘저팬’이라고 쓴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들은 이 표기를 그다지 탐탁잖게 생각한다. 그들은 ‘NIPPON’이라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말 표기로는 ‘닛폰’이 된다.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JAPAN은 ‘지팡고’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팡고’는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일본을 가리켜 쓴 이름이다.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 동쪽에는 황금의 섬 지팡고가 있다”고 썼다. 이후 서양사회에서는 지팡고에 대한 동경이 확산됐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한 이유 중에 ‘황금의 섬’ 지팡고를 발견하는 것이 포함돼 있었음은 물론이다.

마르코 폴로가 일본을 지팡고라고 쓴 것은 일본(日本)의 중국 한자발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을 당시 중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지펀’이다.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코 폴로는 이 발음을 듣고 자기 식으로 ‘지팡고’로 비슷하게 표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 민족주의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韓國)’을 중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한궈’가 되는데 영어로 쓰면 ‘HANGUEO’쯤 될 것이다. 우리가 한국이라는 국명의 영문 표기를 ‘KOREA’ 대신 ‘HANGUEO’라고 쓴다고 가정해보면 이것이 어떤 사태일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서양에서 정해준 JAPAN이라는 영문 표기를 순순히 따라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일본인들의 자신감이 커지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진 탓인지 최근 국제무대에서 ‘JAPAN’ 대신 ‘NIPPON’이라고 쓴 영문표기가 제법 눈에 띈다. ‘NIPPON’은 일본 민족주의자들이 애용하는 표현이다. ‘日本’이라는 한자를 일본 한자음으로 읽을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니혼(にほん·NIHON)’이고 또 하나는 ‘닛폰(にっぽん·NIPPON)’이다. 기본적으로 ‘니혼’이 일본의 공식 한자음이다. 일본어(日本語)를 ‘니혼고’라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日本’을 니혼이 아닌 ‘닛폰’으로 읽으면 뉘앙스가 달라진다. 우리말로 옮기면 니혼이 ‘일본’이라면 닛폰은 ‘우리 일본’쯤 된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혼과 정신을 강조할 때 거의 예외 없이 ‘닛폰’이라는 표현을 애용한다. 일본인들이 세계 최강의 칼이라고 자부하는 전통 일본칼을 ‘닛폰도(日本刀)’라고 하지 ‘니혼도’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의 축구 응원팀 이름도 ‘울트라 닛폰’이다.

중국은 요즘 한 술 더 뜨고 있다. 중국은 영문 표기 ‘CHINA(차이나)’를 쓰는 대신 한자로 ‘中國’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운동경기 같은 데서는 ‘中國’ 표기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뛰는 중국선수들을 자주 볼 수 있다. CHINA는 중국 진(秦)나라에서 유래한 영문 표기여서 중국 입장에서는 굴욕적일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그렇다. 참고로 차이나는 중국이라는 뜻 외에 소문자로 쓰면 ‘도자기’라는 뜻도 있다. 중국 도자기가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브랜드가 상품명을 대체한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식당이나 술집에서 ‘소주’ 대신 ‘진로’를 달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일본과 중국의 움직임에 자극 받아 우리도 ‘KOREA’ 대신 ‘HANGUK’ 또는 ‘HANGOOK’이라고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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