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4월 과세 및 예금 정보 공개의 세계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42개의 조세피난처 명단을 발표했다. 이 리스트에는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및 대부분의 카리브해 국가가 포함됐다.
카리브해 주변에는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버뮤다, 바하마 등 35개의 크고 작은 섬나라들이 있다. 이 중 15개국이 OECD가 발표한 조세피난처다. 조세피난처란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면제되거나 과세를 해도 낮은 세금을 적용해 돈세탁과 탈세의 온상으로 여겨진다.
왜 카리브 연안에 조세피난처가 많을까. 하상섭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카리브 연안국의 식민지 역사에서 찾았다. 이 국가들은 오랫동안 서구의 식민지여서 국가 정체성과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하마는 1973년에야 325년간의 영국 통치에서 독립했고 버뮤다는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영국의 속령이다. 하 연구원은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간 사람들이 보내는 돈으로 운영되는 경제가 카리브 국가의 3분의 1"이라며 "어쩔 수 없이 조세 회피를 눈감아주고 수익을 얻는다"고 했다.
적은 인구와 작은 면적 때문에 발전할 산업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카리브해 케이맨제도는 면적이 262㎢로 제주도(1850㎢)의 7분의 1이며 앙궐라는 91㎢, 버뮤다는 53.3㎢이다. 인구도 케이맨제도 4만7000여명, 앙궐라 1만1500여명, 버뮤다는 6만6000여명이다. 제주도 55만명의 10분의 1수준이다.
송상근 삼일회계법인 상무는 "조그만 섬나라들인 카리브 연안국들이 경제적으로 마땅히 할 만한 것이 없어 조세피난처를 제공하고 거기서 나오는 서비스 비용 등을 수입원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카리브 연안국의 지정학적 위치도 조세피난처가 된 중요한 요인이다. 카리브 연안국들은 북위 20도~40도에 몰려있어 날씨가 좋다. 대체로 따뜻하며 일년 내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데 지장이 없어 최고의 관광지로 꼽힌다.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조세본부장은 "특별한 이유 없이 와서 휴양을 즐기다 간단히 서류상으로 회사 하나 만들 수 있는 곳이 조세피난처가 된다"며 "국내에도 많은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했지만 앞으로 OECD의 규제에 따라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