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30분 걸렸어요. 이렇게 늦으면 고객이 다시 안 시켜요.”

혼자 나간 첫 배달. 다른 직원이 30분이면 충분할 음식 배달을 1시간 30분에 걸쳐 다녀온 기자에게 ‘라이프매니저’ 사장 이재홍(30)씨의 따끔한 일침이 가해졌다.

음식 배달은 대신맨 업무 중에 가장 단순하고 잦은 일이다. 기자가 오토바이 운전과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1시간이나 지체된 것. 지도로 확인하고 나갔을 때는 간단하게 생각했었지만 고객이 지정한 음식점부터 고객 주소까지 막상 나가니 헛갈리기 일 수였다. 결국 근처 부동산에 물어물어 겨우 배달을 완수 할 수 있었지만 땡볕에 1시간 넘게 길을 헤맸더니 진이 다 빠졌다. 그러나 숨 돌릴 틈은 없었다.

대신맨들은 새벽시간에 화물 나르는 일에도 불려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안 늦게 돌아오셨네.”

“휴…네?”

“학원 이사 가세요.”

영등포구에 위치한 보습학원에서 이사를 가는데 대신맨을 부른 것. 학원은 바로 10여 미터 옆의 건물로 옮기는 것이었다. 대신맨 두 명의 비용은 5만원. 기본 20만 원 이상이 드는 이삿짐센터와 비교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직원 김경래(30)씨와 사무실 차를 타고 학원에 도착. 작은 학원이었지만 둘이서 책상, 의자, 책장, 책 등을 모두 나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 반에 걸쳐 일을 마쳤다. 어깨가 지끈거리고 허리가 쑤셨다. 고맙다며 학원 원장이 음료수를 권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다른 일이라도 종종 부를게요.”

“아, 고맙습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김씨는 “오늘 일은 성공이다”며 “고객이 ‘다음에 또 부를게요’라고 말해 줄 때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대신맨은 결국 고객과의 신뢰가 생명. 때문에 단골 고객의 확보와 입소문이 중요하다. 그래서 작고 힘든 일이라도 허투로 할 수가 없다.

“원룸 창문에 커튼 달아주세요.”

가는 길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불러주는 주소로 방향을 돌려 원룸에 도착했다. 여성 고객이 인터넷으로 구입한 커튼을 달아달라는 것. 드릴로 나사못을 박고 높은 곳에 커튼 봉을 설치하는 작업은 여성 혼자 하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대신맨 비용은 7000원.

여성 고객은 “이렇게 편리한 서비스가 있는데 그동안 몰랐다”며 “친구들에게도 소문내 주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필요한 일을 하고 상대방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이사에서 커튼 달기까지 취재 전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는 기자의 말에 이씨와 김씨는 자기들이 겪은 대신맨 경험들을 쏟아냈다.

사장 이씨는 “대낮에 어느 모텔로 특정 성인용품을 사다 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성인용품점에 가서 물건을 고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미국에 있는 고객이 한국에 있는 여자 친구 숙취해소를 위해 죽과 약 배달을 부탁한 것’, ‘베란다에 있는 애완견의 변 처리’, ‘학교 끝난 아이가 학원 갈 때 까지 2km 구간 보디가드’, ‘애인에게 풍선이벤트 하는 것 도와주기’ 등 수 많은 대신맨 경험을 풀어놨다.

이씨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별의 별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이 이 직업의 묘미”라며 “한편으론 힘들지만 재밌는 일도 많다”고 덧붙였다.

직원 김씨는 “70이 다 되 보이는 할머니의 화분 30여 개를 작은 화단에 옮겨 심어 드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힘든 일이었지만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골처럼 매주 일정한 시간에 특정한 음식 배달을 주문하는 고객들도 있다. 이 분들이 어쩌다 한 주 주문이 없으면 안부를 걱정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사연이 담긴 주문도 있다. 일본의 한 고객이 경북 안동에 있는 읍내 빵집에서 빵을 사서 서울에 계신 어르신에게 배달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비용이 꽤 나오는 데도 과거 은사님의 소원이었던지 고객은 꼭 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떤 고객은 자기 대신 바다낚시를 나가서 자연산 회감을 잡아오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다소 황당한 이 주문은 결국 고객과 비용부분이 서로 맞지 않아 취소됐다.

두 대신맨의 끊임없이 쏟아지는 경험담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빌린 오토바이를 돌려주러 가는 길. 머리와 옷에선 땀 냄새가 나고 물집이 터진 손은 따끔거렸다. 허리의 욱신거림도 느껴질 때. 이씨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일이 많을 때 오셨어야 하는데. 특이한 경험도 못하시고. 힘든 일도 별로 못하시고. 취재에 도움이 됐나 모르겠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