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亡者)의 넋을 위로하는 것은 음악이 지닌 힘이자, 동시에 임무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진혼곡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을 뜻하는 '레퀴엠(Requiem)'입니다. 모차르트 자신의 미완성 유작으로 남은 레퀴엠이 유명하지만 베를리오즈, 베르디, 브람스, 포레, 브리튼, 리게티 등 여러 작곡가들이 저마다의 음악으로 망자의 넋을 기리고자 했지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시인 윌프레드 오언(Owen)의 시에 바탕 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 반전(反戰)과 평화를 갈구한다면, 리게티의 '레퀴엠'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수용소에서 숨을 거둔 아버지와 남동생에 대한 위로가 녹아있습니다.
베르디의 레퀴엠은 최후의 심판을 담은 '분노의 날(Dies Irae)'을 강조해서 한편의 오페라처럼 극적인 느낌이 두드러지고, 포레의 작품은 '분노의 날'을 덜어내는 대신 '우리를 용서하소서(Libera Me)'와 '낙원에서(In Paradisum)'에 비중을 실어 한층 따뜻합니다.
작곡가의 원래 의도와는 관계없이, 후세에 진혼곡으로 쓰이는 음악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Barber)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플래툰'의 참혹한 전쟁 장면에서 역설적으로 흐르던 그 구슬픈 선율입니다. 당초 작곡가의 현악 4중주 1번 2악장이었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 때 중계방송에 삽입되면서 지금은 추모음악으로 더욱 친숙합니다. 2001년 미국 뉴욕 '9·11 사태' 당시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에서도 이 곡이 흘렀지요.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 역시 비슷합니다. 영화 '베니스의 죽음'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였던 이 곡은 1968년 로버트 케네디 미 상원의원의 장례식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연주하면서 추모음악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200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지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내한공연 때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을 기리는 뜻으로 이 곡을 연주했지요.
영국 작곡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가운데 9번째 변주곡 '님로드(Nimrod)'는 작곡가의 친구인 어거스트 재거(Jaeger)를 위해 쓴 곡입니다. 독일어로 그의 성이 '사냥꾼'이라는 데서 착안해 전설적인 사냥꾼의 이름을 붙였지만, 따뜻하기 그지없는 현악의 선율 덕분에 지금은 추모 곡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러시아 명문 볼쇼이 극장을 이끌었고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로도 재직했던 마르크 에름레르(Mark Ermler)가 2002년 서울시향 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타계하자, 서울시향이 연주했던 곡이기도 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타계 이후, 진혼곡과 씻김굿을 통해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모든 진혼곡은 떠나버린 이를 기리지만, 동시에 남아있는 우리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떠난 그와 남은 우리가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경계에 서있는 음악이기에, 언제나 진혼곡에는 처연함이 깃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