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토론을 해 보아도 죽음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을 결코 알 수 없다. 죽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살을 하는가? 삶에 대한 고통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능가하는 그 시점에 자살을 한다. 존재(存在)의 고통이 무(無)의 공포보다 더 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보통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이 컸던 이유는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도 자살을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지위는 속세의 벼슬로는 최고의 자리이다. 인간세(人間世) 최고의 큰 출세가 대통령 되는 것 아닌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극치 자리이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지낸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은 그 자리를 지냈던 영광과 환희를 상쇄시키고도 남는, 더 큰 생존의 고통을 맛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했던가! "도가 높아질수록 더불어 마(魔)도 왕성해진다."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의 자리·재물·권력이 강하면 거기에 비례하여 행복할 것으로 짐작해 버린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그게 아니라는 인생의 철리(哲理)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삶의 번뇌는 시장의 채소장수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다는 '고통 평등'의 이치를 알게 했다.
대통령은 스타이다. 스타에는 '픽션 스타'와 '논픽션 스타'가 있다. 영화배우·탤런트·가수 같은 연예인이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픽션 스타라면 대통령이나 역사적 인물은 각본 없는 논픽션 스타이다. 이들 스타들의 얼굴과 행동은 신문과 방송에 수시로 등장한다. 보통 사람들은 매스컴을 통하여 매일 스타들을 접한다.
조선시대에는 매스컴이 없었으므로 세종대왕의 얼굴도 몰랐고, 이순신 장군 얼굴도 몰랐다. 얼굴을 몰랐으므로 그런 사람이 죽어도 애도감은 덜하다. 현대인들은 매일 화면으로 얼굴을 보고, 라디오로 목소리를 듣고, 신문에서 접하는 스타가 죽었을 때 마치 가족이 죽은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특히 픽션 스타보다 논픽션 스타의 자살은 허무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삶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헛되고 덧없는 '몽환포영(夢幻泡影)'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입력 2009.05.3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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