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쳐보세요."
악보엔 오선지가 없었다. 대신 생전 처음보는 알파벳 코드만 적혀 있었다.
그녀는 "코드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솔직히 말했다. 교수들은 황당했다. 실용음악과에 시험보러 온 수험생이 악보를 볼 줄 모른다. 불합격이었다.
"그럼 악보 없이 쳐봐요."
한 교수가 몇 가지 노래를 주문했다. 그녀는 막힘없이 건반을 눌렀다. 음악 정규교육 코스를 밟지 않은 아이의 실력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신인 가수이자, 촉망받는 작곡가이자, 감성적인 피아니스트이자, 대학 강사가 됐다.
싱어송라이터 유해인(본명 유경옥ㆍ28)은 그저 노래 부르고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은 없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 듣고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다. 천재 아니다. 피아노는 내게 가장 친한 친구같은 존재였고 습관처럼 함께 했을 뿐이다."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유해인은 2002년 제1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혼자 걷는 길'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드라마 '아일랜드', '메리대구 공방전', '스포트라이트', '환생' 등의 OST에 참여했다. 가수 헤이, 이은미에게도 곡을 줬다.
유해인의 능력을 눈여겨 본 이은미가 음반을 내보자고 했다.
"처음엔 가수로 활동한다는 게 두려웠다. 작곡자일 땐 남 부르는 걸 보기만 했는데. 이젠 내가 써서 사람들 앞에서 불러야 하니까 부담스러웠다. 이은미 선생님의 경험담과 충고가 힘이 됐다."
최근 발매된 유해인의 디지털 싱글 앨범은 타이틀곡 '너무 사랑했던 날'을 비롯해 '어디에 있나요', '혼잣말' 등 세 곡으로 구성됐다.
잔잔하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잠이 온다. 눈을 감으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유해인은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은미의 전국 투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고 있다.
그녀의 목표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를 쓰는 것"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어릴 때부터 수천 번 넘게 봤다. 음악을 사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다. 이 영화에서 부른 에델바이스의 멜로디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멜로디를 나도 쓰고 싶다. 세월이 지나서 들어도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