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28)은 28일 새벽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66분을 뛰었다. 팀은 0대2로 패했지만 그는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꿈의 무대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를 밟은 영예를 누렸다.
오늘의 박지성을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박지성이 초등학교 때부터 품었던 축구에 대한 '꿈'이었다. 본지가 입수한 초등학교 3~6학년 시절 박지성이 쓴 일기장의 일부에는 그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국가대표가 내 꿈"
초등학생 박지성은 산수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는 3학년 일기엔 "내가 산수를 잘해야 된다고 말하는 엄마. 그래서 엄마는 주산 학원까지 보내고 있어요. 제가 30점을 맞았어도 (선생님) 비웃지 마세요. 원래는 주산 6급에 암산 7급이었다구요"라고 적었다. 이를 읽은 담임교사는 "비웃기는… 성적은 열심히 하면 오르고 게을리하면 떨어지는 것을 지성이는 알고 있겠지"라는 답 글을 적어 놓았다.
그러나 이 시절 박지성의 일기는 대부분이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났다. 일기 속의 박지성은 일찌감치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고 있었다. 겨울방학인 3학년 1월 4일 일기는 "축구 끝나고 돌아오니 다리가 얼 정도로 추웠다. 얼어붙은 동태가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축구 끊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적었다. 4학년 5월 10일 일기에는 '고달프지만 참을 수 있다'는 비장한 제목이 달려 있었다. "지금까지 축구를 해 봤지만 고달프고 힘은 든다… 오늘은 특히 힘들었다. 다른 사람도 참는데, 내가 못 참으랴 하면서 했다. 힘들지만 참아서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축구부 '떡볶이 회원'에 가입한 박지성은 축구훈련을 한 뒤 떡볶이를 사먹고 오느라 귀가가 늦어 아버지 박성종(51)씨로부터 "축구 하지 말라"는 꾸지람도 들었다. 4학년 10월 10일의 일이었다. 박지성은 이날 일기에 "아빠가 축구를 하지 말라기에 두려웠다. 이유는 내 꿈이 축구 국가대표이기 때문"이라고 적어놓았다.
■평발의 고통도 꿈으로 극복
박지성의 일기를 보면 축구에 대한 초등학생의 집념이 이렇게 강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4학년 11월 22일 일기장에 박지성은 "감기 걸려 축구를 못했다. 연습을 못해 걱정이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의 두 배로 열심히 축구 연습을 하겠다"고 썼다. 아픈 것보다 연습 못한 걱정이 더 컸던 박지성. 할머니 집이 이사를 하는 날에는 축구부로 갈지, 남아서 이사를 도울지 고심한 끝에 "나의 꿈을 이루려고 (축구부로) 간다"(4학년 12월 5일)는 내용을 적어놓았다.
박지성이 평발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이런 사실을 초등학교 5학년 때도 몰랐던 모양이다. 5학년 5월 2일엔 평발 탓에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이상한 일'이라는 제목의 일기로 적어놓았다. "운동을 조금 하니까 발이 아프다. 며칠 전에는 괜찮았는데…. (하지만) 아픈 것을 참으며 해야 한다. 그래야만 축구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축구로 부모님께 보답"
어릴 적의 박지성은 유난히 작은 키도 큰 고민이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가 개구리를 잡아다 달여 먹였다. 체격 탓에 나중에 국내 K리그에선 아예 지명도 못 받았다. "(키가 작아서) 중학교 못 가면 어쩌나 걱정이다. 이 일을 풀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밥을 많이 먹는 것밖에 없다. 엄마가 주신 양은 꼭 골고루 먹어 덩치가 커지고 키도 커져서 축구를 더욱더 잘할 것이다.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대학교 국가대표까지 갈 것이다."(5학년 12월 15일)
박지성이 개구리를 먹은 이야기는 일기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부모가 개구리라는 사실을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사슴피를 먹은 이야기는 있다. 6학년 4월 20일 일기에서 박지성은 "사슴 피를 몸이 약하여 먹었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는데, 엄마와 아빠에게 보답으로 축구로 성공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구절이 나온다. 6학년 말엔 중학교에 가서 축구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의 일기도 보인다. 12월 23일 박지성은 "오늘로 휴식은 끝났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된다. 지금부터 훈련이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없이), 나의 개인 운동을 하겠다"고 적어놓았다.
일기 속의 박지성은 성적 때문에 선생님께 혼날까 봐 겁내는 보통 어린애였다. 하지만 축구에 대해서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꿈을 가진 별난 아이였다. 바로 그 꿈이 오늘의 박지성을 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