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Obama) 미 행정부는 22일(현지시각)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이번 사태가 한국사회와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노 전 대통령 서거가 다음 달 16일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미 국무부의 한국담당 관리들은 워싱턴 DC 시각으로 22일 저녁 9시(한국시각 23일 오전 10시)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직후, 비상연락망을 통해 이를 공유하며 적절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행정부의 한 관리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며 안타까워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오늘은 아무런 공식적인 발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평양·섬 정상회의 참석차 홋카이도(北海道)를 방문 중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크게 놀랐다. (내가) 외상으로 재임하던 당시 (한국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도 이날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크게 놀랐다. 노 전 대통령의 인품과 공적을 기리며,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동시에 유족과 한국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한편 외신들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은 "노 전 대통령은 부패 척결을 외치며 2003년 취임했지만, 그의 임기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스캔들과 여당 내부 갈등의 연속이었다"며 "2004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탄핵되기도 했으나, 헌법재판소가 이 결정을 뒤집으며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노 대통령이 2004년 탄핵 사태 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개혁 어젠더를 더 강하게 밀어붙일 힘을 얻었으나, 이라크 파병, 수도 이전,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 등 잇따른 인기 없는 결정으로 지지도가 급락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노 전 대통령은 청렴한 정치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측근과 가족들이 연관된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최근 10시간 넘게 검찰 조사를 받았다"며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 실망시켜서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뢰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으며, 이런 형태의 사과는 부패스캔들에 대해 연루 사실은 부인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은 져야 하는 한국 정치인들의 전형적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업가와 연관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스캔들에 시달리는 한국 정치 환경에서 거대 재벌로부터 수천억을 모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의 경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때로 반미로 보이는 민족주의 물결을 타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선거운동 당시 "미국에 정정당당히 할 말은 하는 한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 사실도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근 확대되는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명예에 큰 손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당시 지지도는 낮았으나 청렴한 정부를 이끈 것에 대해 존경을 받았으며, 최근 임기 중 자신의 부인이 부유한 지역 사업가로부터 돈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이날 오전 9시40분(한국시각) 외신 중 가장 먼저 긴급 뉴스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타전했다. 이 통신은 한국 경찰청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노 전 대통령이 등산 도중 추락했으며, 병원에 옮겨진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확인했다.

AP통신은 서울발 보도에서 현대 한국 지도자 중 첫 자살로 기록된 이번 사건으로 한국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서울 시민 박경희(46)씨는 이 통신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CNN방송은 이날 10시 뉴스에서 한국 특파원을 연결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최근 수사 내용, 자살에 이르게 된 배경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관련 분석기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해온 한국 진보 세력이 정부에 대한 항의와 비판을 강화할 것이 확실시되며, 그럴 경우 한국 정국은 단숨에 긴장 상태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NHK는 이날 10시4분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CCTV,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등도 일제히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사건 발생 상황과 유서 내용, 한국 검찰의 사건 조사 종결 등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CCTV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한국 인터넷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으며, 일부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중앙인민라디오방송(CNR)은 "부패와 연루된 추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렸으며, 이것이 죽음의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류장융(劉江永) 교수는 이 방송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서민에 친근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다른 상황"이라며 "이번 일로 자신의 이미지가 크게 추락한 데 대해 지지층에 대한 자괴감이 컸고, 스스로도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랍권 대표적 영어채널 알 자지라는 이날 오전 시간대별 뉴스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머리뉴스로 내보냈고 홈페이지에도 관련 소식을 톱기사로 배치했다. 알 자지라는 노 전 대통령이 남북화해를 위해 싸운 전사였다며 청렴한 정치인이었던 그가 퇴임 후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비운을 맞이하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