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2시 신림동 고시촌의 A카페. 4인 테이블 세 개와 2인 테이블 두 개 정도의 작은 카페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카페는 에스프레소(공기 압축으로 뽑아낸 이탈리아식 커피)를 기초로 한 커피와 생과일주스 등을 팔고 있었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손님들은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는 대학생부터 친구와 수다를 떨며 머리를 식히는 고시생까지 다양했다. 테이크 아웃(매장에서 먹지 않고 가져가는 것)으로 사가는 손님들도 줄을 이었다.

“제가 처음 일했을 때가 2006년 이었어요. 당시 제일 번화한 고시원길(고시촌 내 국민은행ATM에서 호암길까지 400m정도 되는 골목길)에 우리를 포함해 이런 카페가 3개 정도 밖에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열개가 넘을 걸요. 처음엔 ‘이런 고급스런 분위기의 카페가 고시촌과 안 어울리네’하며 말이 많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하하하.”

A카페 직원 진모(28)씨는 현재와는 사뭇 달랐던 3년 전을 생각하며 말했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신림동 고시촌으로 불리는 대학동(구 신림9동)과 서림동(구 신림2동) 지역을 직접 살펴본 결과 크고 작은 카페가 42개가 있었고 그 중 12개가 고시원길에 있었다. 3년 새에 고시원길에만 카페 수가 4배나 증가한 것이다.

보이는 건 고시원·독서실·책방에 유흥 거리로는 PC방·술집·만화방이었던 신림동 고시촌에 ‘카페 열풍’이 불고 있다. 이 같은 카페 열풍에 대해 진씨는 ‘원두커피에 대한 인식과 커피문화의 변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원래 고시생들은 밥 먹고 잠시 커피 한잔에 수다 떨며 스트레스를 풀어요. 그때 정보도 나누고요. 예전엔 주로 자판기 커피로 놀이터나 독서실 휴게실에서 마셨죠. 그 문화가 이제 카페로 장소를 옮긴 겁니다.”

여자친구와 카페를 찾은 서울대 경영대 3학년 휴학 중인 신모(남·23)씨는 “고시 인구 중에 여학생 수가 늘어난 것도 이유일 수 있다”며 “당구장이나 플스방(일본 소니사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이용할 수 있는 방)처럼 여자들이 스트레스를 풀만한 공간이 없는데 이런 카페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또 “고시촌에서 데이트하기도 용이해 졌다”면서 방긋 웃었다.

고시촌에 위치한 카페들은 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은 커피)를 1200~1600원에 카페라떼(아메리카노에 뜨거운 우유를 부은 커피)를 1500~2000원에 판매한다. 생과일주스도 1500~2500원 선. 강남 일부 지역 카페의 10000원에 가까운 커피 값은 물론 대형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의 가격과 비교해도 30~50%정도 저렴하다. 그래도 초창기엔 200원 짜리 자판기 커피와 500원 짜리 캔커피 문화였던 고시촌에서는 위화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로 5년 째 사법고시 준비 중인 김모(남·29)씨는 “처음엔 커피전문점이라는 곳이 여기와는 안맞다고 생각했어요. 가격도 자판기에 비하면 부담스러운 액수였죠”라면서 “그러나 이젠 커피 향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해요. 외부에 비하면 한참 싼 가격인 것도 인정되고요. 고시촌 분위기 자체도 좀 밝아져서 좋아요”라고 카페열풍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어서 “친구들이 찾아와도 함께 얘기할 공간이 생겨 좋다”며 “친구들은 처음엔 세련된 카페 인테리어에, 다음엔 싼 가격에, 마지막으론 의외로 좋은 커피 맛에 놀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카페 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종류의 카페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커피가 아닌 다양한 차를 저렴한 가격에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 아기자기한 소품 인테리어와 고시생 할인으로 마케팅을 하는 곳도 있다.

최근 고시촌에 새롭게 문을 연 카페 아트리샤도 ‘갤러리 카페’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 카페는 크지 않지만 벨벳소재 의자 등 고급스러운 내부 인테리어와 이국적인 외부 테라스 테이블까지 갖추고 있다. 카페 곳곳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고시촌과는 사뭇 어색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트리샤 매니저 유예진(여·40)씨는 “충분한 시장가능성을 보고 들어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유씨는 “고시촌엔 고시생은 물론 서울대생과 강남지역 직장인, 학원강사까지 여러 집단이 모여 있다. 유동인구도 풍부하다”며 “그만큼 다양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클래식한 카페를 원하는 손님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유씨는 “분위기는 클래식 음악과 인테리어로 고급화 하고 다양한 예술 이벤트로 차별화 마케팅을 계획 중”이라며 “매니아층을 끌어들이고 몸과 마음이 지친 고시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새로운 공간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림동에서 30년 가까이 공인중개업을 해온 노봉현(남·71)씨는 “최근 카페 증가는 결국 장사가 되기 때문”이라며 “그 전에 당구장, PC방, 플스방이 유행했듯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고시촌 카페열풍을 설명했다. 노씨는 또 “다른 대학 주변보다 가게 전세나 월세가 싼 편”이라며 “자금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것도 빠르게 카페가 늘어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카페의 급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 카페 직원은 “지금 로스쿨 문제 등으로 유입 인구는 보합세”라며 “이렇게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 공급 과다로 올해 안에 문 닫는 곳이 여럿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시생 이모(여·24)씨는 “결국 카페도 유혹의 장소”라며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공부를 다소 소홀히 할 수 있다. 너무 많이 생기면 면학 분위기가 흐려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