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유독 이상 현상처럼 보이고 있는 독립영화의 인기에 대해 영화계 내에서조차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우발적 사건인가. 아니면 영화계 전체에 후 폭풍을 몰고 올 거대한 변화의 전조일까.
지난 3월 종영된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최종 관객 수는 전국 284만명. 극장 매출만 200억원에 육박했다. 단관 개봉으로 시작돼 순전히 소문으로만 전국 200~300개 스크린으로 확대되기까지 영화계 누구도 이렇게까지 흥행에 성공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워낭소리'는 방송용 프로그램으로 제작됐지만 방송은 하지 못한 채 돌고 돌다가 가까스로 극장 상영의 기회를 얻었다. 영화계로서는 외계인 격이었던 만큼 이 영화의 흥행을 두고 일부에서는 '소가 뒷걸음질치다 노다지를 밟은 일'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한 편의 영화에 100만명 넘는 관객이 모일 때는 이유가 있다. 작품이 갖는 내적 에너지가 그만큼 남다르기 때문이다. 특정한 이벤트성 효과만으로는 결코 관객몰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영화계의 오랜 중론(衆論)이다.
'워낭소리'는 최악의 경기 상황에서 피로한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는 작품이었다. 특히 아버지 세대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중·장년 세대를 끌어낸 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빅뱅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충격파는 계속 이어졌다. 곧이어 개봉한 노영석 감독의 독립장편영화 '낮술'은 2월 초 전국 10개 스크린 안팎에서 개봉, 상영 2개월 만에 3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국내 개봉 전 해외 17개 영화제에서 각종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파란을 일으킨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역시 3월 말에 개봉, 상영 약 한 달 동안 전국적으로 10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1000만 관객의 시대를 경험한 영화팬들에게 3만명이니 10만명이니 하는 것은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수치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제작비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낮술'의 경우 단돈 1000만원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최종 3만명이면 매출 2억원에 순수익으로 약 1억원을 벌어들인 셈으로 수익률로 따지면 가공할 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똥파리'는 순 제작비가 2억5000만원이었고 마케팅 비용 등을 포함, 총 4억원을 써서 7억원의 극장매출을 올렸다. 순수익으로는 총비용을 보전하지 못했지만 국제 영화제에서 워낙 주목을 받았던 탓에 해외시장에서의 부가 판권이 충분히 이를 메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왜 이들 작품에 영화 마니아를 넘어서 일반 관객들까지 열광했을까. 직접적으로는 이들 작품이 그간 독립영화가 지녔던 '대중적' 취약점을 많은 부분 극복했기 때문이다. 완성도와 세련미가 일반 상업영화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데다 '의미'가 '재미'보다 훨씬 강조되던 기존 독립영화와 달리 그 두 가지를 병렬로 배치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워낭소리'의 배급사 인디스토리, '낮술'과 '똥파리'의 배급사 진진 등 독립영화권의 마케팅 전법이 '집안 울타리식'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상업영화권으로 뚫고 들어간 것도 유효적절했다는 평가다.
최근의 독립영화들이 HD급, 디지털 카메라로 제작되는 것도 이들 영화사들의 운신 폭을 넓혀주고 있다. 예전 같으면 스크린마다 걸어야 할 필름을 뜨기 위해 막대한 돈이 들었으나 디지털 상영관을 운용하는 멀티플렉스의 경우 그 비용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독립영화에 대해 관객들이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바로 '새로움'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늘 양면적이어서 전통적 장르영화와 감독들을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미학을 선보이는 작가의 출현을 고대한다. 최근의 경향은 바로 그렇게, 새로운 영화가 나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대중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여전히 열렬한 반응을 얻고 있는 홍상수·박찬욱·봉준호 감독 역시 영화계 데뷔가 10년이 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관객들은 새로운 강산을 보고 싶은 것이다.
독립영화의 기세가 등등해진 것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 영화판 판 갈이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영화계는 2006년 후반 극도의 하강 국면을 맞으면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상업영화 대 독립영화(비상업 영화 일체, 예술영화 혹은 저 예산 영화,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양상을 보여왔다.
상업 영화권에서부터 먼저 제작비 절감과 그에 따른 의식 전환의 필요성이 강조됐으며 이는 독립영화권의 제작 방식을 일부 차용하는 데서 양 진영의 인력 교합(交合)과 시스템 교체가 진행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현상은 결코 몇몇 작품의 우연한 성과가 아니다. 독립영화권의 확장, 이를 통해 영화계 전체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여전히 예측불허의 측면도 있다. 기대를 모았던 영화아카데미의 기대작 '장례식의 멤버' '어떤 갠 날'은 여전히 단관 개봉 수준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종영됐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워낭소리' 등의 흥행에 열광하는 것은 독립영화를 지나치게 상업화시키는 것으로 이들 영화가 갖는 본래적 목적과 의미가 변질될까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