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기사(記事)를 보면 기사(棋士)의 단위(段位)가 '○○○ 七단'처럼 한자숫자로 표기하는 경우와 '○○○ 7단'처럼 아라비아숫자로 표기하는 것이 혼재돼 있는데 아라비아숫자와 한자숫자로 표기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 서울 강남구 독자 김원씨


A : 한자는 프로, 아라비아  숫자는 아마추어 段位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한자는 프로, 아라비아숫자는 아마추어의 단위를 적을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표기원칙은 한국 바둑행정을 총괄하는 한국기원에 의해 1964년 시작됐습니다. 당시까지 뚜렷하지 않던 프로·아마 개념을 정립하면서 단위 표기를 통해 양쪽을 구별하기로 한 겁니다. 아마추어로 남기 원하는 프로의 경우 3단을 올린 단위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아마추어행을 택한 김규태 二단과 홍종현 초단은 각각 5단과 4단이 됐습니다(홍씨는 이후 1969년 프로로 재입단, 2003년에 九단에 올랐습니다). 이후 한국기원과 그 기관지인 '월간 바둑'은 이 원칙을 반세기 가까운 최근까지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기사의 단위 앞에 번번이 '프로'나 '아마추어'를 붙이지 않아도 됐으니 일종의 표준화 작업이었던 셈입니다.

이 규정은 지난 반세기 동안 그저 '불문율'로만 통해오다가 2005년 한국기원 바둑규칙 규정집에 비로소 올라갔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아마추어 고단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프로 기사로 오인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프로 쪽에서 강력히 문제를 제기, 규정집에 명문화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합니다.

조선일보에선 일관되게 이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요즘엔 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 김지석 五단 대 뤄시허 九단 전 기보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두 기사 모두 물론 프로입니다. 그 직전 게재됐던 정찬호 7단 대 유신환 7단 전은 아마추어 예선결승 기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철통 같던 전통도 얼마 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기원이 발행하는 아마추어 단 인증서의 단위 표기가 한자로 바뀌기 시작한 거죠. 아마추어 강자들이 프로를 꺾는 일이 빈발하면서 프로의 절대 권위가 사라져가고 있으니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