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20)씨의 공부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는 중2 때 영국 요크(York)대 교환교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유학 길에 올랐다. 공립인 풀포드(Fulford) 스쿨에 입학할 당시, 학교 선생님이 "'upstairs'와 같은 기본 어휘부터 익혀라"고 말할 만큼 영어실력이 낮았다. 그러나 입학한 지 3년 만에 영국 물리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고교 졸업 후 귀국, 서울대(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한 그는 '관정 장학금' 수상자가 된 뒤 다시 영국으로 떠나 '자연과학부 세계 1위'로 평가 받는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했다.
◆부족한 영어실력, 플루트 연주 등 강점으로 이겨내
영어실력이 부족한 채로 10학년에 편입했기에 학교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비즈니스 수업 쪽지시험에서 40문제 중 6문제밖에 못 풀었다. 어머니 조은숙(46)씨는 초라한 시험지를 들고 풀이 죽은 아이에게 "너보다 못한 아이가 있더냐"고 물었다. "있다"고 답하자, "못하는 영어로 무려 여섯 문제나 푼 것은 대견한 일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보다 똑똑하고 자랑스럽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케임브리지대 교정을 보여주며 "여기가 앞으로 네가 다니게 될 대학"이라 격려하며 어깨를 다독였다. 기훈씨는 "어머니 칭찬에 어려운 교과목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듬해인 11학년 때는 GCSE(영국 중등자격시험)의 비즈니스 과목에서 'A'를 받았다.
그는 친구들의 말을 노트에 적어뒀다가 반복해 사용하며 영어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모든 친구가 영어 선생님이라는 마음으로 하루 한 가지씩 말할 토픽을 생각하면서" 등교했다. 또 특기와 취미생활이 학교생활에 활력을 줬다. 어린 시절부터 익혀온 플루트 연주로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고 그 덕에 친구들과 사귈 기회가 많아졌다. 여기다 빼어난 수영 실력까지 더해, 교사와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만의 강점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회고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 공세를 폈다. 귀찮아하던 선생님도 기훈씨의 뜨거운 열정에 두 손을 들 정도였다.
"혼자서 공부하면 함정에 빠지기 쉬워요. 꼼꼼하게 검토하지 못하거나 잘못 이해할 때가 있기 때문이죠. 저는 선생님 또는 친구들과 토론을 벌이며 이런 함정을 피했어요. 교내 물리 동아리를 만들어 토론을 자주 했죠. 또 실험이나 자연 관찰을 통해 제가 아는 내용이 옳은지 검증했어요."
공부범위가 학교 수업을 넘어서자 선생님들도 그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고심하던 차에 케임브리지대 출신 수학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상위권 중학생들을 지도하러 학교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훈씨는 당시 고교 2학년이었지만, 중3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질문하며 궁금증을 해결했다.
◆존경하는 과학자 자서전 읽으며 동기 부여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던 그는 물리 올림피아드 공부를 시작했다. 영국의 우수 사립학교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교사들이 많지만, 공립학교 상황은 다르다. 할 수 없이 혼자 힘으로 올림피아드를 준비했다. 이 대회에 출전했던 선배가 한명도 없었기에 자문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기훈씨는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물리는 수학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해 케임브리지대 수학과에 입학허가를 받은 학생들이 보는 STEP 시험문제를 풀며 실력을 쌓았다. 덕분에 풀포드 고교 역사상 최초로 영국 물리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모르는 문제도 절대 답지를 보지 않았어요. 가능한 여러 방법으로 풀 수 있도록 한 문제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조건이 열악했기에 오히려 더 끈기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공부뿐 아니라 봉사활동도 활발히 했다. 특히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에 관한 프로젝트에 힘썼다. 'PEST(Pupil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Team)'라는 동아리에서 교내 휴지 및 쓰레기 재활용 분류, 컴퓨터 전원 끄기 등 에너지 절약운동을 전개했다. "환경보전 문제도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많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동네 양로원을 찾아 공연했다.
풀포드 고교 졸업식에서 강군은 학교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장래 가장 훌륭하게 될 인재상'을 뽑는 교내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기훈씨는 후배 유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목표를 뚜렷이 세우라"고 조언한다. 과학자의 꿈을 키운 그는 공부할 때마다 '지금 하는 공부가 물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물리학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리처드 파인만 등 과학자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도 이들처럼 자연에 대해 알아가며 깊이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라면 재미가 있을까요? 자신이 왜 유학을 오게 됐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겨 보세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유익한 일을 하고, 장차 그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돼야만 진정한 성공이겠지요. 처음에는 유학생인 우리가 '약자'이고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다른 '약자'들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유학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