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최대의 공창(公娼)이 있다. '밤에 피는 튤립'이라 불리는 '데 왈렌(De Wallen)'구역이다. 데 왈렌의 매춘업은 1413년 시작됐으며 1960년대에 지금 같은 모습을 갖췄다. 2000년 매춘이 합법화된 뒤 허가제로 운영되는 이 구역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250만명이나 된다.
데 왈렌은 그 자체로 네덜란드의 주(主) 관광 수입원이다. 암스테르담을 찾는 전체 관광객의 36%가 이곳에서 연간 1억 유로(1700억원)를 뿌리고 있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매춘업소만 497개에, 126개의 섹스클럽, 100여곳의 에스코트 서비스업체가 영업하고 있다.
현재 암스테르담의 성 매매 여성은 8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30%가 497개 매춘업소에, 30%가 섹스클럽, 10%가 에스코트 서비스업체에서 일하고 있으며 나머지가 개인 성 매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매춘정보센터(PIC)까지 가동되고 있다.
그런 데 왈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욥 코엔(Cohen·62) 시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작년 1월 '매춘 규정'을 어긴 불법 성 매매가 성행하자 홍등가(紅燈街)를 '패션 거리'로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암스테르담은 이미 51개의 매춘업소를 사들여 패션 마네킹 전시장으로 개조했다. 시는 '레드 라이트 패션 암스테르담' 계획을 추진하면서 앞으로 매춘업소 전체의 절반까지를 더 사들일 계획이라고 한다.
'레드 라이트 패션 암스테르담' 이란 성 매매 여성들이 차지했던 쇼 윈도를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은 마네킹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를 지휘하고 있는 코엔은 한마디로 미아리 집창촌을 없앤 한국의 김강자 전 서장이나 장안동 퇴폐 마사지 거리와의 전쟁을 선언한 이중구 동대문서장 같은 존재다. 더 놀라운 것은 데 왈렌을 합법화시켰던 인물이 바로 코엔이라는 사실이다.
코엔은 1977년 정치에 입문한 뒤 네덜란드 상원 노동당 대표(1998~2001)를 지냈다. 그는 2001년 시장에 당선됐는데, 기독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앙정부와 달리 차별화한 노선을 걷고 있다. 급진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시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매춘을 합법화시킨 그가 느닷없이 홍등가 개조에 나선 것은 성 매매가 '법적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법 성 매매가 드러나는 업소의 영업을 박탈하는가 하면 심할 경우 건물 자체를 사들여 젊은 패션디자이너에게 1년간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찾은 데 왈렌 구역은 시장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국 출신 매춘부들의 인종 전시장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행인을 붙잡거나 말을 거는 대신 쇼 윈도에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기자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성 매매 여성에게 다가가 취재를 하려 하자 그녀는 "허락을 받으라"며 주인 로빈을 소개해줬다. 로빈은 "겁먹지 말고 들어와 보라"며 컴퓨터와 세탁기, 타월 등이 갖춰진 내부를 구경시켜줬다. 그는 "이곳은 성 매매가 합법적인 비즈니스"라며 "허가증도 있고 세금도 철저히 낸다"고 했다.
하지만 외면적인 광경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인신 매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1998년 27개의 인신매매 조직을 적발한 뒤,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성 매매 합법화'라는 카드를 뽑았지만 여전히 터키와 알바니아인들이 연루된 마피아 조직이 활개치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정부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홍등가를 비롯한 네덜란드 전역에는 최대 3만명이 성 매매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50%가 외국인으로 추산된다. 지난 2003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성 매매 여성의 10%인 3000명 정도가 인신매매조직에 의해 납치돼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