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불덩어리가 팍 솟아올라 배추농사 못 짓겄습디다. 바다와 하나되는 무아지경의 희열을 한번 더 느끼고 싶어서. 내일 모레 환갑이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되겄지요. 수영 인생 50년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해 볼랍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趙五連·57)이 내년 8월 6일쯤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한다. 29년 만의 재도전이다. 조오련은 "이번에는 거제 장승포 앞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첫 도전 때보다 수영 거리가 9㎞ 늘어나 16~18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은 조오련에게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시험대였다. 1970년 방콕,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400·1500m 연속 2관왕에 오르며 주가를 날렸지만 1978년 방콕 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치자 "조오련도 이제 한물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것이 독기(毒氣)를 자극했을까. 2년 뒤인 1980년 8월 11일 그는 부산 다대포에서 쓰시마 서쪽 끝까지 55㎞에 이르는 바닷길을 13시간16분 만에 헤엄쳐 건너며 존재감을 강렬히 부각시켰다. 1982년 도버 해협 횡단 도전이 신통치 않은 기록으로 끝난 뒤 조오련은 세인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졌다.
그가 수영 교실을 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2001년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코믹 연기를 하던 그의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은 묘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걸 조오련도 알았는지 2003년 한강 600리 주파, 2005년 삼부자(三父子)의 울릉도~독도 횡단을 성공시키며 도전 정신을 재확인시켰다.
지난 4일 제주도 애월읍 유수암리의 펜션에서 조오련을 만났다. 이틀 전 해남 집에서 새소리가 들리는 한라산 중산간의 한적한 마을로 건너온 조씨 부부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눈치였다.
스물여덟 한창나이 때의 첫 도전에 비해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는 "냉수대(冷水帶)를 피하고 쿠로시오 난류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체중을 늘리고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단계라고 했다.
"어제 몸무게를 쟀는데 80㎏이에요. 한 10㎏ 더 불려야지. 원영(遠泳)에서 상어나 해파리 공격보다 무서운 게 냉수대예요. 해파리가 쏜다는 건 수온이 높다는 얘기니까 오히려 낫지. 바다 밑에서 불쑥 솟아올라 온몸을 사정없이 얼려버리는 파란 물 덩어리, 이건 아주 악질이거든. 몸에 두꺼운 '지방 갑옷'을 만들어야 해요."
그는 "스태미너에는 민물장어가 최고"라며 "고기는 구워 먹고 뼈는 삶아서 마시고…. 지금도 내려오면서 장어 즙을 한잔 마시고 왔다"며 웃었다. 해남 고향 집에서 양봉을 해서 어릴 적부터 벌꿀도 즐긴다고 했다. 조오련은 하체 단련과 지구력을 키우는 것부터 훈련을 시작할 계획이다. 외도 수영장까지 두어 시간 속보로 걸어가 하루 50m 레인을 100번 정도 헤엄치겠다고 했다.
조오련은 '어울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작년 7월 내내 독도 주변 해역을 33바퀴 수영하는 도전에 성공한 뒤 극심한 무력감에 빠졌다고 한다. 전남 해남 계곡면 법곡리 집에서 술에 빠져 식사도 거르던 그를 마을 이장인 이영배씨가 집으로 불러 밥을 챙겨 먹였다.
그때 상을 봐주던 이장의 여동생 성란(44)씨가 지금 조오련의 아내다. 9년 전 심장마비로 아내를 잃은 조오련은 지난 4월 18일 이씨와 재혼했다. 훈련 준비에 바빠 신혼여행은 아직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사람, 속을 버려 밥도 제대로 못 먹더라고요.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는 건데 싶어 오빠가 집으로 초대했죠. 자주 보니 정들고 그러다 보니 결혼하게 됐어요."(이성란)
부부는 13년 나이 차가 뭐 그리 대수냐며 마주보고 웃었다.
조오련의 도전에는 가로 5m, 세로 10m 깊이 2m 크기의 보호망과 이것을 끌어줄 예인선, 고무보트 같은 장비가 필요하다. 의료진과 진행 스태프도 12명 정도 있어야 한다. 1억원 정도의 경비가 필요하지만 그는 아직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다.
"해남 땅 잽혀 갖고 돈 만들어 여기 왔어요. 일단 부딪혀 봐야지.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뭐 있겄습니까. '보호 그물망 살 돈 없어서 조오련이 도전 못했네' 하는 소리는 안 나오게 뛰어야지."
그는 "너무 '이벤트'에 집중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걸로 돈 벌어본 적 한번도 없다"면서 "내가 역사에 관심이 좀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넌 일본인? 아직 없어요. 짜식들이 엄두를 못 내는 거지. 나는 우리 민족의 힘에 대해 생각하는 게 많아요. 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사학과로 학사 편입한 게 다 그런 것 때문인데…."
5남 5녀의 막내로 다섯 아들이 이어져 '오련(五連)'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그에게 영화 '친구'에 나오는 질문을 던졌다.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이하고 수영시합 하모 누가 이기는지 아나?" 그는 "가까운 거리라면 바다거북이 이기겠지만 10㎞가 넘어가는 긴 수영이라면 내가 자신 있다"며 웃었다.